작별하지 않는다-한강
반세기를 넘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을 그린다.
경하가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작별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만한 고통만이 진실에 이를 자격을 준다는 듯이,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뿐이라는 듯이.
죽음인지 아닌지 모호한 그곳에서 죽음 너머의 것들이 이야기한다.
내가 선택한 작별, 그리고 나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나.
인선의 묘사와 나 자신을 기름종이에 대고 그리는 그림처럼 비추어 따라 그려본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위안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안도가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을 응원하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 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 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그녀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떤 말도 허투루 뱉지 않는, 잠시라도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 때문일 거라고.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있었다.
불길이 번졌던 자리에 앉아 있구나, 나는 생각한다. 들보가 무너지고 재가 솟구치던 자리에 앉아 있다.
총살했던 자리가 밤사이 썰물에 쓸려가서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던 모래밭.
이렇게 하려고 모래밭에서 죽였구나 했던 순간.
시신들을 바다에 던진 군인들.
모든 것을 지켜본 이후 바닷고기를 먹지 않는 바다노인.
비행기 활주로 콘크리트 아래에 묻어져 있던 유골들.
모든 것이 스러진 자리에, 죽음을 묻은 자리에 살아감을 쌓는다.
작가는 다르게 움직이는 새의 두 눈을 이렇게 그린다.
그의 한쪽 눈은 벽에서 움직이는 인선과 아마의 그림자를, 다른 쪽 눈은 유리창 밖 마당에서 저녁 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사를 사는 것 같은 걸까.
두 개의 눈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한 개의 시야로 사는 인간이 두 개의 시야를 가진 이의 세계를 그려보려는 이해의 시선이 따스하다.
나의 시야가 다른 시야를 향할 때의 온도가 그랬으면.
그런 사람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