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원의 공익이란
나는 몹시 이성적이었고, 굉장히 냉철했고,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남편의 외도를 알아챈 이후, 빛의 속도로 상간녀 소송을 진행했지만, 이혼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쉽게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에 대한 사랑이나 미련이나 나를 향한 남들의 시선 같은 게 아니었다.
이혼 가정에서 자라나게 될 나의 소중한 아이에게 끼칠 평생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2달의 고민 끝에, 나는 상간녀 고소를 진행했던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었던 변호사’ 에게 이혼 소송도 함께 진행해 달라고 했다.
신중한 결정임을 자부하는 내게 법원은 묻고 또 물었다.
이혼가정에서 자라게 될 자녀들의 모습, 이혼과 같이 진행될 면접교섭 때의 부모의 태도, 이혼으로 아이들이 겪게 될 혼란에 대해 각 가정들의 예시로 재연한 동영상이었다.
첫 번째 법원의 요구는 공익광고 같은 그 동영상을 보고, 그에 대한 시청소감을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했다.
‘이혼을 결정하셨다면 이제부터 이 재연가족들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래도 이혼을 하실 건가요?’
하고 묻는듯한 뉘앙스가 가득 느껴져 신맛이 났다.
그 동영상을 본 이후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마음은 죄책감이었다.
’ 어떤 사유로 이혼을 하려고 하시는지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혼을 결정하셨군요, 당신이 하려는 이혼은 바로 부부의 결별이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만든 소중한 자녀가 이렇게 저렇게 불행해질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래도 이혼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가정법원의 메시지를 압축해 놓은 재연 동영상을 보고 눈물이 났다.
‘내가 진짜 이혼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우리 아기도 저렇게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지. 그때 나 혼자의 존재가 아이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내가 너의 삶을 망치는 건 아닐까…’
이미 벌어진 일을 내가 바꿀 수는 없었다.
그의 외도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고, 아이 아빠로서 인정하고 용서하는 것은 아직 나중 문제였다.
나는 일단 나를 보살펴야 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자를 선택해 결혼한 것.
많이 사랑했던 그의 외도를 알아버린 것은 바꿀 수 없었다.
그런 그와 보편적 가족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그런 그를 나의 남편으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예전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그를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나의 아이가 아빠를 인정할리가 만무했다.
이런 가족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한 공간에 있음으로 아이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가족을 주고 싶지 않았다.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빠가 아이를 사랑하는 모습을 거리낌 없이 느끼게 해주고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었다.
가족의 형태보다 가족의 사랑을 더 물려주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가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생활하는 가족이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나의 작은 행복한 순간 하나를 아이와 온전히 나눌 수 있는 것. 그리고 아이도 그 안에서 행복한 순간이 하나 더 늘었으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이혼을 한 번 더 결정하고 변호사를 통해 가정법원에 소감문을 제출했다.
이제야 이혼소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