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거닐다_20160829
8월 29일,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의 일이었다. 남쪽으로 내려오며 빌딩 사이를 빠져나가던 4호선 지하철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촌에서 동작으로 넘어오며 강을 가르던 찰나, 홀리듯 눈 앞의 광경에 빠져 들었다. 미세 먼지가 적게 실린 차가운 공기가 대규모로 남하하면서, 하늘이 유독 푸르를 것이라는 아침 뉴스가 떠올랐다. 무엇 하나 거슬릴 것 없이 깨끗해진 하늘을 바탕 삼아, 노랗고 붉은 가을의 몸짓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여름의 바다가 가을의 단풍이 되어 하늘에 떠 있었고, 끝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실려온 노을이 파도가 되어 넘실거렸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노을이었고, 언제라도 떠올리고픈 석양이었다.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서울 하늘에 갑자기 가슴이 뛰었고, 동공이 확장되면서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엽서에서나 보았던 풍경이 그대로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간에는, 저 멀리 거대한 소실점인 63 빌딩의 금빛 얼굴마저도 하늘의 그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부랴부랴 휴대폰을 들었다.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아쉽게도 배터리는 한 칸 남짓한 시한부 삶을 드러냈다. 헐떡거리는 생명을 붙잡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들어봤지만, 맞은편 좌석 앞으로 벽처럼 둘러선 사람들 덕에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나는 이때의 감동을 누군가와 나누어야겠다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왼쪽 좌석의 젊은 여성은 처음 칸에 올라탔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에 열중하고 있었다. 에어쿠션을 얼굴에 팡팡 두드렸던 그녀는 이제는 마스카라까지 진도를 뺀 모양이었다. 오른쪽 좌석의 남자는 고개를 있는 대로 숙이고 있었다. 그 상태로 주위에 철벽을 치고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어서, 청년인지 청소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맞은편 좌석으로 눈을 돌렸을 때 안타깝게도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라도 시선이 마주쳤다면, 주책 맞게도 어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라고, 노을이 정말 아름답다고 말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생전 처음 보는 이에게도 권하고 싶은 눈부신 풍경이었다. 이런 노을이라면 누구라도 꼭 봐야만 할, 반드시 즐겨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 것이었다.
어떤 이는 좌석에 파묻혀 두꺼운 책을 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옆 자리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은 채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남성도 있었다. 그 앞에 서있는 하얀 블라우스와 회색 펜슬 스커트 차림의 여인은 지하철 손잡이에 있는 힘껏 무게 중심을 실어 지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손잡이는 물에 젖은 미역처럼 축 늘어져버린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기둥이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직장인도 있었고, 볼 일을 보고 집으로 귀가하는 듯한 중년 여성도 있었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스마트폰에 손가락을 대고 빠르게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3-2칸 누구 하나 눈 앞의 풍경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겨 창 밖의 풍경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노을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가롭게 하늘 감상이나 하기에는 그들의 하루가 너무 고단했던 것일까. 나 혼자만 유난을 떠는 것인가 싶은 애매한 감정 속에 지하철은 다시 땅에 닿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1달 남짓, 나는 아직 서울보다 다른 세상이 익숙했다. 출퇴근 때마다 이용했던 시내버스가 신기했고, 매일같이 출근해 일하던 여의도의 하늘도 생경했다. 잠시 떠나 있는 사이 지하철에 생긴 중국어 명칭 안내도 생소했고, 번화가에 빼곡히 들어찬 수많은 사람들도 낯설었다. 알 수 없는 노래들이 길거리에 흐를 때는 누구의 노래인가 싶었고, 집 근처에 전에 없던 높은 건물이 떡하니 하고 들어선 것에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여행자였고, 아직은 적응을 끝내지 못한 이방인의 눈으로 일상을 익히고 있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는 매일 보았던 서울의 하늘도 색다르기만 했다. 서울로 출퇴근하며 적어도 수십 번은 보았을 청명한 서울의 하늘도, 여행자의 마음에는 어제의 하늘이 아닌 '그 날'의 하늘로 새겨졌다.
그렇게 불쑥 찾아온 서울의 가을 하늘 아래서, 나는 쿠바 아바나의 말레콘으로 떠났다. 스리랑카 네곰보 해안에 다녀갔고, 프랑스 니스에서 해변을 거닐었다. 바르셀로나의 맑은 하늘 아래 있었고,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던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위 하늘과 재회했다. 그곳에서의 하늘이, 그 시간의 노을이, 하늘을 담아 일렁이던 호수가, 금빛으로 물들던 바다가, 서울 하늘에 고스란히 있었다. 마치 그때의 하늘을 빔 프로젝터에 담아 서울 하늘 위로 그대로 쏟아 올린 듯, 닮은 듯 다른 모습의 하늘이 내 곁에 있었다. 서울의 하늘과 노을이 이리도 아름다운 것이 마냥 감사했다. 내가 사는 이 곳에서의 하루도 여행처럼 멋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가슴에서 큰 북이 울렸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여행이 끝났다고 해서 마냥 아쉬워하거나 그리움에 갇혀 살지 않는 것. 매일 여행했던 곳만을 생각하며 향수에 빠져 익사하지 않는 것. 나와 가까운 곳, 몸을 부대끼며 사는 곳, 내 하루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것. 특별함을 찾는 것이 어렵다면, 소소한 일상도 근사하게 채워가며 사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하듯 하루를 살고, 하루를 매일의 여행으로 완성하는 것이었다.
3-2칸의 사람들이 다시 떠올랐다. 유난히 청명했던 그날의 하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늘처럼 대했던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그 순간은, 지친 몸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이자,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이었을 수 있다. 평범했던 일상일 수 있고, 지긋지긋한 하루의 연속이었을 수도 있다. 짧은 시간동안 스쳐버린 사람들의 표정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건, 그들에게서 1년 반 전의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게다.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는 그들에게서 여행자의 설렘이나 상기된 미소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아니, 혹시 또 모르지. 그중의 몇몇은 그날 유독 SNS에서 회자되던 서울의 노을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행복해하고 있었을지도.
사랑하는 남편과 지구 어딘가에서 일상같은 여행을 하며 지냈습니다.
남들보다 느린 시간을 살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끄적거립니다.
1년 3개월간 길 위의 소소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우리 이 곳에서도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