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세계여행, 함께 지구를 거닐다_20151104
신경 마비. 32살의 젊은 여자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질환이었다. 게다가 결혼을 코 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뭐든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던 인생, 결혼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은 움직여지지 않는 나의 오른손을 보며 적잖이 당황하는 듯했다. 머리를 감을 수도, 옷의 단추를 잠글 수도, 심지어 젓가락질도 못 하는 나를 보고서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그렇게 정확히 결혼 피로연을 10일 앞두고, 나는 신경마비를 진단받은 환자의 몸이 되었다.
원인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들은 의견은 과도한 업무와 야근으로 인한 과로가 주요 원인이라는 것. 게다가 완벽한 드레스 핏을 위한 다이어트, 야근 탓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결혼에 대한 압박,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날의 회식이 겹쳐 이런 상황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절망할 새도 없이 나는 며칠밖에 남지 않은 결혼식에 조금이나마 호전된 모습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치료를 받았다. 다이어트를 중단하고 엄마가 만드는 기력 충전 음식들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갖은 노력에도 오른손은 쉽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른 손목을 들 수도, 손가락 하나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피로연에 임했다. 피로연 내내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는 손님들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고, 피로연이 끝날 때쯤 결국 내 손은 퉁퉁 부어 버렸다.
결혼식 당일에도 문제는 생겼다. 축하 인사를 와준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도 그 흔한 브이(V) 포즈를 모두 왼손으로 해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 탓에 부케를 제대로 들 수도, 축하하는 하객들의 손을 덥석 잡기도 힘들었다. 정신없이 바쁜 본식 와중에도 나의 신경은 내내 오른손에 가 있었다. 혹시라도 사진 촬영에 불편한 손이 포착될까 싶어서였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컸던 나의 결혼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결혼 후 서서히 회복될 줄 알았던 오른손은 어김없이 예상을 빗나갔다. 30대 초반의 경우 한 달 정도면 서서히 회복하고 곧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다. 남편이 근무를 위해 지방에 내려가 있는 평일에는 대형 병원과 한의원을 함께 다니며 재활과 물리치료를 반복했고, 남편이 오는 주말에는 그간의 힘든 치료와 불편한 일상에 대해 남편에게 투정하는 신혼 생활이 되풀이되었다. 평일에는 감정이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주말에는 하늘까지 올라갔고, 남편이 내려가는 월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더 낮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결혼 직후 여자들이 겪는다는 신혼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했다. 건강과 일을 동시에 내려놓게 된 원인이 모두 결혼 탓인 것만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고, 데이터와 보고서 대신 빨래와 설거지로 씨름하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아픈 내가 싫고, 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은 회사에 화가 나고, 주말 부부로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남편까지 미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낮에는 허한 마음을 달랜다는 핑계로 폭식을 일삼고 밤에는 불면증으로 인해 잠을 자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우울의 크기는 실로 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우울함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나는 서둘러 두 달간의 병가를 끝내고 복직을 결심했다. 몸이 다 나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더 다치기 전에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복직은 또 다른 문제를 불렀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업무는 어김없이 쏟아졌다. 그동안 밀렸던 업무를 해내느라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병가로 인해 자리를 비웠던 점이 동료들에게 내내 미안했고 나는 이를 메꾸기라도 하듯 더 열심히 일했다. 일하는 동안 오른손에 통증이 느껴질 때면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이를 악물고 버티며 잠시 쉬었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복직 후 두 달이 지나자, 몇 시간의 컴퓨터 작업도 거뜬히 견딜 만큼 오른손은 회복되었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는 만큼 나의 업무는 점점 늘어갔다. 어제, 오늘이 그랬듯 내일도 아프기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일만 하다가 퇴근길에 사고라도 나서 죽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헛된 인생을 산 걸까?’
문득 두려워졌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제대로 사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걸까?"
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나는 처절하게 지금과는 다른 삶이 필요했다. 그 주말, 나와 남편은 이 문제에 대해 밤새 얘기를 나눴다. 나만 불행과 가까워졌다 생각했는데 남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요일 밤이면 서울에 올라와 다음 주 월요일 새벽에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편 역시 야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택에서 동기들과 지내는 생활은 결혼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외로움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주말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평일 내내 새벽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쉬고 싶어 하는 아내가 있을 뿐이었다. 남편 역시 업무가 많을 때는 주말에도 올라오지 못했다.
각자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우리의 결혼 생활이 앞으로 어떠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함께 세계여행을 가자고 다짐했던 연애 시절이 생각났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대학 졸업 후 100m 달리기를 하듯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인생이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다면 제대로 완주하기 위한 페이스 조절과 숨 고르기가 절실했다. 게다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본격적인 새 학기를 앞두고 인생의 2막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32년간 다르게 살아온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여행을 통해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가능하리라 여겨졌다. 해외의 다양한 국가와 업무를 하던 나와 남편은 이메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현지의 생생함을 알 기회가 되리라는 합리화도 더해졌다. 그렇게 앞으로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온전히 우리를 위한 시간을 1년 정도 쓰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겼다. 막연한 믿음을 구체화하면서 나와 남편의 세계여행은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사실화되었다.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 마치 우리의 운명인 양 여겨졌다.
그렇게 우리는 회사를 그만두고 결국 세계여행을 떠났다. 첫 결혼기념일이 지나고 며칠 뒤인 2015년 4월 29일 태국 방콕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무더운 아시아의 여름을 지나, 유럽을 가을을 만끽했고, 곧 겨울과 만날 예정이다. 지금은 차를 빌려 프랑스 남부를 한가롭게 돌아보는 중이다. 무려 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편과 나는 24시간 내내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했다. 거대한 배낭을 함께 메고 걸었고, 길을 잃기도 했고, 매 끼니를 얼굴을 마주 보며 식사를 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여행이지만 조급하지 않은 일상 같은 여행을 하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떠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느냐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내가 할 대답은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다는 것.
라오스에서 베트남까지 화장실도 없이 26시간 동안 험악한 산간 지대를 달리는 지옥 같은 버스를 탔을 때도, 너무나 더러워 침낭을 깔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침낭을 깔고 자도 영 찝찝해 잠들기 힘들었던) 인도의 수 많은 숙소에서도, 남편이 수동차 운전에 익숙지 않아 파리 시내 중심가에서 몇 번이나 시동을 꺼뜨려 진땀이 났을 때 조차 나는 단 한 번도 이 여행을 떠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남편의 마음도 당연 나와 같다. 돌아갈 회사도, 쉴 수 있는 집도 없어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건 떠나기 전보다 떠나고 난 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져 돌아가리라는 것. 그리고 이 여행으로 인해 우리는 두고두고 깔깔거리면서 그때 그랬지 하고 곱씹을 둘 만의 추억이 생겼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이 정도 행복하면 된 거지 뭐. 지금 충분히 행복하니 미래의 행복은 돌아간 후 다시 차근차근 만들어 가자고 단순하게 마음먹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여행 그 자체와 서로에게 집중하며 여전히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