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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Dec 18. 2015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

부부 세계여행, 함께 지구를 거닐다_20151024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잘츠부르크(Salzburg)행 열차를 타기 위해 빈(Wien) 서역에 들어서는 순간 이른 시간임에도 기차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난민들이었다. 지난 유럽 여행 중 난민들을 몇 번 보았지만 그렇게나 많은 인파는 처음이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나라에서 온 그들은 오스트리아의 매서운 겨울 날씨에 오들오들 떨며 하얀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담요를 둘둘 둘러말고는 겨우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어떤 여인은 기차역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는 여러 명의 자식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앳띤 모습의 청년들은 길 위에서 주운 담배를 나눠 피우며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몇 백 명은 되어 보이는 그 틈에서도 어린 딸에게 아침을 먹이느라 애를 쓰는 아빠가 있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다. 또 다른 이들은 최신 휴대폰에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기도 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히잡을 둘렀으며, 남자들은 누가 봐도 아랍 계통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이었다.


혹시라도 기차를 놓칠까 봐 일찍 나온 탓에 나는 승강장에서 이십 분 넘게 열차를 기다렸다. 나 역시 추위를 느끼고 있었지만 얇디얇은 옷차림이던 그들 앞에 춥다고 투덜댈 수는 없었다. 아침으로 샀던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내 손이 부끄러워졌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그것을 내밀만한 용기도 없던 나였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다행히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는 나와 시리아에서 태어나 불행하게도 전쟁의 희생자가 된 그들은, 동시대를 살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에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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