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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Jul 16. 2020

스웨덴에 가볼까?

지쳐 있던 어느 날

“스웨덴에 갈래?”

그날은 유독 지친 하루였다. 퇴근을 하고 남자 친구의 집으로 바로 갔었다. 며칠 나는 야근을 했고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는 늘 별로 스웨덴을 그리워하지 않았었는데 문득 나에게 물었다

“갑자 웬 바람이야?”하고 나는 웃었다

“그냥 고국을 떠나 온 지도 3년이 넘었고 정리할 것도 있고, 너도 스웨덴에 가고 싶어 했잖아. 영원히 가서 살자는 건 아냐. 다만 나도 한국에서 살아 봤으니, 너도 스웨덴에 살아 보고 둘이 어느 나라에 살지 정하면 좋을 거 같아서”


사실 그랬다 막연하게 스웨덴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때는 남아있던 유럽에 대한 환상 때문일 수도 있고 당시 남자 친구의 고향이 궁금했을 수도 있고, 나는 그와 사귀기 이전에 이미 2번이나 스웨덴에 여행을 다녀왔었다. 늘 여름에 갔고 백야와 고즈넉하면서 조용한 도시 스톡홀름을 꽤나 좋아했었다

솔직히 굉장히 솔깃했다. 당시에 모든 인테리어 혹은 디자인 트렌드는 북유럽 스타일이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써, 북유럽에서 일해본다는 환상이 없는 디자이너는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취업 비자는 쉬운가? 그런데 나는 결혼 생각은 없어. 너도 알다시피. 우선은 내가 스웨덴에서 직장을 구 할 수 있어야 하겠네?”라고 하니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스웨덴엔 결혼을 하지 않아도 파트너 비자를 신청할 수 있어. 흔히 동거 비자라고 부르는데 잘은 모르지만 어렵진 않을 거야. 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고 어떤 회사는 영어만 사용하니까 아마 네가 직장을 구하면서 거주허가 신청을 해 봐도 될 거야 비자 신청에서 승인까지 오래 걸리거든” 그 대답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원래 평생 결혼 생각이 거의 없던 나는 뭐 특별하고 원대한 이유로 비혼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면 가끔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사가 있거나 남자에게 심한 트라우마가 있거나 하는 엄청난 스토리를 나에게 기대하지만 부모님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남자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트라우마가 있지도 않았다. 다만 결혼제도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와 결혼식을 싫어했고, 나 이외 누군가를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것, 이미 있는 가족에 대해 만족하는데 또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거라는 제안은 나쁘지 않았지만 엄마가 문제였다. 아버지는 몇 해 전에 암으로 돌아가시셔서 계시지 않았고 어머니만이 남았는데 그녀는 6.25 이전에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평범한 엄마였다. 그녀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게다가 그녀에게 나는 남자 친구가 있고 외국이라니 그녀는 울었었기에, 단기간에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하 큰 불만이 없었다. 내가 일하는 업계는 사회초년생에서 5년 차 미만까지는 죽도록 힘들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더 재밌고 좋은 직종이었다. 이제 겨우 슬럼프를 벗어나서 다시 일이 재밌고 좋아지는 시기였다. 게다가 떠나기 직전 내가 몸 담았던 직장은 조금 특별한 곳이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온 회사로, 단순히 인테리어뿐 아니라 부동산 기획은 물론 프랜차이즈에 들어가는 모든 사인디자인 그리고 리넨 등 전반적인 코디네이션까지 담당해야 하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평소에 프로젝트 중에서도 유독 호텔 디자인을 좋아했던 나에겐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친한 친구 몇 명 에게 이 일을 상의했으나 대답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외국생활이라는 것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혹은 이미 어느 정도 한국에서도 자리를 잡은 상태인데 제로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그리고 예전처럼 외국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이점이 되는 시대도 아니다 하는 의견이 있었고 긍정적인 의견은 막연하게 미디어에서나 나오는 북유럽에 대한 환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나 스스로 되물었 을 때 안정은 되었으나 무언가 내 안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럴 때 새로운 세상에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신청하였다. 생각보다 비자는 간단하지 않았다. 장시간 동안 작성을 하고 또 한 장기간 동안 그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중간중간에 추가 서류와 인터뷰도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막상 가려고 마음먹으니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고 무엇보다 스웨덴은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들 역시 크게 도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웨덴으로 가서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영문 한글 두 가지 버전으로 자료를 찾고 준비하였다. 다른 북미나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타 유럽에 비하면 자료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그런 일을 대행해 줄 대행사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았다. 그러던 중 당시 남자 친구가 일찍 스웨덴에 먼저 돌아가게 되어서 비자가 나올 때까지 원거리 연애도 시작하였다. 원거리는 절대 안 한다고 다짐했지만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이 스웨덴으로 가기 시작한 나의 첫 번째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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