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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Jul 17. 2020

먹방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스웨덴은 미각 상실의 도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먹는 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의 부분 중 하나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식가였고 엄마는 요리가 취미였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대접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가족 모두가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것도 즐겼다. 그래서 먹는 것은 나에게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닌, 나에게 휴식과 위안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는 한 번도 요리를 하지 않았다. 취미도 없었고 가끔 친구들에게 “과일도 못 깎는다”라는 타박마저 받으며 살았다.


적어도 내가 크던 한국사회에선, 요리는 여성의 미덕으로 강요되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주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은 꽤 진취적으로 나를 키우고 평등하게 키워진 탓인지 우리 집은 엄마가 부재중일 때 아빠의 밥이나 오빠 밥 같은 걸 차리지 않아도 되었고 오히려 오빠의 몫이었다. 그런 의무에서 자유로워서 나는 먹는 “입” 만을 담당했었다. 나에게 음식의 고된 노동력의 결과물보단 즐거움, 좋은 면만을 누리고 즐기는 즐거움이었다.


낯선 땅에 와서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너무 단순했다. 당장은 직업과 돈이 없었다. 그리고 이곳의 외식물가는 턱없이 비쌌으며 심지어 비싼 돈을 지불하여도 만족도가 떨어졌다. 게다가 이들에게 아직은 한국은 낯선 나라이고, 미국이나 독일처럼 교민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라 그리운 한국음식을 외식으로 접하기 힘들고 비싼 현지 음식에 비해서도 더 비쌌다.


게다가 영국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다지만, 스웨덴을 따라올 수 없었다. 런던에 놀러 갔을 때, 런던은 영국 음식은 맛없긴 하지만 다른 나라 음식은 맛있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전반적으로 다른 나라 음식마저 맛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이케아 마저 한국 이케아 델리가 더 맛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회사에서 가끔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미각상실자들이 뭘 아냐며 속으로 욕했다. 그리고 스웨덴 음식이 맛없는 편인 것은 적어도 내 주변의 한국사람들은 다들 동의했다. 브라질 친구는 스웨덴에선 절대 커피 안 마신다 라고까지 하였고 스페인 친구는 스웨덴 토마토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일을 하면서 놀라운 풍경 중 하난 그들은 점심식사를 매우 간단히 한다는 것이다. 토스트 한 조각 샐러드 등으로 배를 채우고 점심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 처음엔 이 모든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창 시절 급식도 꽤 부실하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식사는 그다지 중요한 시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질이나 손질, 재료 고르기를 제외하면 어렵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김치는 물론 간장 고추장 된장 등 모든 식재료를 집에서 만들고 산에 가서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식당을 하실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그 탓인지 요리를 전혀 모른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꽤 많은 식재료를 알고 있고 대충 어떻게 다듬는지 기본양념은 뭘 넣는지 대충 어떻게 하면 맛이 나는지가 감이 왔다. 물론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은 아니기에 조미료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물들이 나왔다


게다가 요리를 하는 건 디자인과도 꽤 닮아 있는 부분이 많았다 좋은 요리는 조화가 필요했고 적당한 감각을 필요로 했으며, 담음새를 좋게 하기 위하여, 음식 종류에 맞는 예쁜 식기와 수저 등이 필요했다 그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져서 결과를 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저 그런 한 끼 역시도 예술이고 신성한 노동의 대가라 생각했다.

어느 날인가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김치찌개의 재료는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이란 정성이 필요했다. 재료를 오래 볶고 끓일수록, 맛이 나는 거다. 어떻게 엄마는 이렇게 찌개 하나도 어려운데 매일같이 찌개와 반찬을 내어 차릴 수 있었는지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라 생각이 되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요리를 하는 것에 대하여 격상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 위대한 일은 꽤 오랫동안 폄하되었다. 하지만 이 만큼 정성을 들여서 누군가에게 표현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작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 그건 요리라 하겠다. 나는 오늘도 또 하나의 예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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