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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Jul 17. 2020

무언가가 깨져야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이별이 있어야 만남도 있다

멀쩡한 직장을 나 두고 화목한 가정을 뒤로하고 스웨덴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의 일이다. 일부 북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다들 말렸다. 이민자가 살기 힘들다더라, 남자만 믿고 어떻게 가느냐, 가서 주부로 살 거냐.... 솔직히 말하면 올 때부터 살림이나 하고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올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내 안에서 나에게 준 시간은 일 년, 이년 안에 일을 하지 못하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무모한 결정이었다. 당시 나는 스웨덴어는 한마디도 못 했으며, 영어도 그다지 자신 있지 않았다. 의사소통을 하지만 문법도 틀리고 특히 낯선 사람과 대화는 긴장되었다. 그래도 떠났다 후회할지 몰라도 말이다.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물론 오고 4-5개월 정도 일을 안 할 땐 고민했고 힘들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니 나에게 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냥 사는 것과 현지에서 일하는 건 또 달랐다. 처음 우리 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파란 눈의 색목인들이 앉아 있었고 아주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동거인과의 이별도 그렇다. 만약 이별하지 않았으면 나는 과연 스웨덴의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싱글로서 낯선 나라에 살아보는 것을 할 수 있었을 까? 나의 전 남자 친구와 내가 살던 곳은 스톡홀름 중심가였다. 현재 잠시 머물렀던 곳은 그와 헤어지고 같은 회사 동료이자 친구가 그녀의 부모님께 부탁하여 지내게 된 곳이다. 스톡홀름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그곳은 단독주택 단지이고 집 마당으로 가끔 사슴이 뛰어다닌다.


전형적인 아스팔트 킨트인 내가 그런 전원생활을 만끽할 기회가 이별이 아니 였다면, 있었을까? 그분들의 호의로 전통 스웨덴 주택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나는 다른 친구의 소개를 받아 시내 아파트에 나의 첫 번째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공간에 대한 경험뿐 아니다. 남자 친구가 있을 땐 동료들과도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솔로 선언을 한 뒤로 많은 스웨디시들이 내 일처럼 챙겨주고 본인들의 파티에 초대해 줬다.


게다가 급하게 집을 구해야 해서 나의 매니저에게 “나 사실은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 집을 구해야 하는데 혹시 세입자를 구하는 집이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내 매니저의 첫마디는 “너 한국 다시 갈 거야? 가지 마! 지금 일도 여기 있는데 또 면접보고 사람 구하기 힘들어. 비자를 바꿔야 한다면 회사에 이야기해서 해줄게”라고 했었다. 사실 누가 한 그 어느 위로보다 위로가 되고 고마웠다. 연애의 끝이 나의 커리어와는 상관없는 것 이 땅에서 내 힘만으로 인정받았던 것 같아서 매우 기뻤다. 하나가 망가졌지만 새로운 세상을 다시 얻은 것이다.


회사를 비자발적으로 나오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믿을 것은 회사뿐 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하고 스웨덴에서 실업급여도 받아보고 내 이름으로 된 개인사업자도 스웨덴에서 내 보았다. 이 모든 것 또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들을 하지 않았으면 글을 쓰는 소재 역시 줄어들었을 것이다. 삶은 질량 보존의 법칙과 같다. 무언가가 깨어지면 무언가가 생긴다. 내가 잃고 있는 것이 꼭 슬픈 만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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