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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Nov 20. 2022

어른은 어느 날 갑자기 된다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고도 없이 어른이 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른은 서서히 천천히 무언가를 준비하면 어른이 되거나 혹은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스무살의 어느 날 당시에 친했던 친구가 당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어른을 보며 “어휴 나잇값도 못하고” 하는데 나는 갑자기 나이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점점 나잇값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가는 것이었다. 미성년자일 때, 학생 다움을 강조하긴 하지만 그것을 나이 값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점점 무게가 무거워지겠구나 하며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녀도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했다 집이 여유롭진 않았지만 그래도 은까진 안되어도 쇠수저 정도 되는 집에서 자라서 회사를 다녀도 집에 생활비를 보태야 한다던지 학비 때문에 학자금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것도 행운이다. 나의 20대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내면의 자아만 싸워도 되었다 나는 그것도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0대는 돌이켜보면 정말 내 안의 나 때문에 힘들었다. 완벽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도 힘들었고 십 대 때도 연애를 했었기에 연애를 안다고 자부했던 것도 그건 그냥 십대 청소년기에 하던 이성인 성별의 친구와의 교제관계 범위였고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다. 자기밖에 모르던 나도 나 자신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고(물론 그것도 더 크고 훗날 돌이켜보면 젊을 때 생기는 호르몬의 영향이며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 이 없기에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친구와도 다투고 화해하고 맞춰가고 내가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이라고 생각한 디자이너도 디자이너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힘들고 아득한 터널 같았다. 그때는 음악도 영화도 책도 주로 내면을 다루는 무거운 작품들을 좋아했다. 나는 그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때는 훗날 무엇을 하지 무엇을 하며 먹고살고 말은 하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아니 생각을 안 했다기 보단 할 필요가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갈 때 조금 어려웠던 집은 오히려 내가 25세가 넘으면서 아버지의 사업이 조금 풀리며 형편이 나아졌고 월급은 나를 위해서 쓰기만 해도 되었었다 가끔 아빠나 엄마가 겨울옷을 사주기도 하고 치과치료나 병원처럼 비용이 드는 치료는 집에서 해줬다. 그때는 그게 어떤 혜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때는 내 주변 나의 친구들은 더 많은 혜택을 부모님께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서 심지어 월급은 저금을 하고 용돈은 부모님에게 받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현실성이 없었다. 집도 차도 이렇게 살다 어떻게 하면 생기겠지 지금처럼 열심히 여행 다니고 살아도 되겠지 하며 살았다 물론 나름 나 자신을 위한 노력은 하고 살았다 여행을 가면서 외국어를 익히고 훗날 스웨덴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그 모든 건 어쩌면 20대의 나는 나만 신경 쓰면 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건 어른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돈을 버는 법적 성인일 뿐 나는 여전히 아이와 같았다


30대의 어느 날 아빠에게 뜬금없는 암 선고가 내려졌다 폐암이었고 의사는 4기라고 했다. 아빠는 강한 사람이었고 임종 3개월 전까지도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전까지 인생에서 부모가 없는 삶을 상상한 적 없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부모님이 안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한적은 있지만 그게 내 일이 될 것이라는 현실감이 없었다. 아빠가 병실에 누워있고 임종을 하는 그날까지도 사실 실감이 안되었다. 인생 최초로 나와 직접적인 혈연관계의 사람을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은 생각보다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다. 서류를 준비하고 하면서 깨달은 것은 더 이상 우리 가정을 완전히 오롯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단 사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 시 전까지 공부를 하던 오빠도 회사를 들어가고 우리가 대학을 가고 나서부터는 경제활동을 안 하던 엄마도(엄마는 맞벌이셨다) 경제활동을 나섰다, 당연하지만 60넘은 엄마는 아빠 같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활비는 엄마가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아빠도 있던 엄마는 강했는데 어느 순간에 엄마도 작아지고 약해지고 있었다. 아빠가 살아있는 동안엔 철마다 엄마를 여행을 데려가고 선물을 사주고 엄마의 기분이 안 좋을 때 그 모든 일을 해주는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가 없는 엄마는 더 이상 나의 보호자가 아닌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다. 그건 이제 어른이 되어야지 같은 개념이 아닌 갑자기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도 위치가 바뀌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은 싫다며 우리에게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소액의 용돈을 드렸다 그럼에도 내 눈에도 매해 엄마가 늙고 약해지는 것이 보였다. 해외로 출국할 때 나는 마음 깊은 곳에 엄마에 대한 부채감 같은 것이 있었다 보호해야 하는 엄마를 두고 나만 살겠다고 나가는 것만 같았다.


해외에 나와 혼자 살면서 더더욱 느꼈다. 나는 여기서 혼자 벌어서 혼자 먹고살아야 하는구나 매일 차려지던 저녁 식탁도 내 욕실의 치약 하나도 다 엄마의 노동력에 나온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한국에서 난 아빠가 돌아가시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구나 싶었다. 해외에 나온 미안함으로 집에 조금의 돈은 보냈지만 그걸로 나의 죄책감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또 다른 공간에서 나를 혼자 오롯이 책임지고 살아야 했기에 그다지 여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해외는 돌이켜보면 나만 건사하고 되면 되는 거였다 그것 역시 어른은 아니다 그냥 어른이 되는 예행연습 정도를 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던 중 엄마의 병환으로 한국에 급하게 온 뒤로 나는 정말로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했다. 나는 갑자기 결혼식을 하고 법적은 기혼이 되고 아픈 엄마를 책임져야 했다 허지웅의 에서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어른에 대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책임을 진다는 건 말처럼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내 소신이 아니라 남의 소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렇다 나는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어른이 아니면 살아낼 수 없는 때가 된 것이다. 너무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해서 나는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왜 아무도 이렇게 갑자기 어른이 돼야 한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생각했다. 나는 어른이 되는 것 한 단계 밟아 가면서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건 갑자기 레벨 1에서 3으로 가고 그리고 5 로가고 중간 단계 없이 10이 되는 일이었다. 더 이상 앓는 소리를 하거나 내가 쓰러져도 이제 나는 내가 추슬러야 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혹자는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보호자 아닌가 하지만 그런 태도로 결혼하면 안 된다. 결혼은 둘 다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결혼해도 힘든 것이다. 각자가 1.5인분을 해야만 굴러가는 공동체이다. 아이가 있다면 한 사람이 2인분은 해야 한다. 나는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이 힘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어른이 되고 보니 그렇게 어른이 되어 어른 몫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끔 인터넷이나 지인들이 나는 이렇게 어린데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되냐는 질문을 종종 듣거나 보게 되는데 나의 대답은 지금은 그 상황을 즐겨도 되지만 상황이 닥치면 더 힘들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처럼 오히려 병환으로 찾아와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는 오히려 행운이다. 사고로 올 수도 있고 오히려 병세가 턱없이 길어져 더 힘든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든 그 힘든 순간을 피할 수 없이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어른이 돼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예고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그렇게 모두들 갑자기 어른이 된다. 나도 그랬고 남들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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