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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Dec 05. 2022

풍광

“어쩜 이렇게 예쁜 거야?”

“초록 병아리가 행진하는 것 같네.”     


이끼로 수를 놓은 담장을 따라 담쟁이넝쿨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약간 촉촉해 보이는 넝쿨 사이로 아직 마르지 않은 은구슬 몇 개를 달고 거미줄이 입을 벌려 벌레를 유혹하고 있다. 대롱대롱 매달린 갈색 고치는 날개 달린 곤충의 번데기 집인가 본데,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담쟁이넝쿨이 가린 하늘 틈 아래 옹기종기 여린 잎 십여 송이가 저마다 쪽빛을 쬐듯 아우성이다. 바닥을 기듯이 얼기설기 엉켜 핀 나지막한 잡풀 사이로는 연보라 빛 손톱만 한 꽃들이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나도 꽃이랍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던 일을 잠시 잊고 이렇게 잡풀의 아름다움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기억에 별로 없다.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집을 짓고 살면서 5년 여 동안 우리 집 뒷산도 딱 한 번 올랐으니, 내가 생각해도 많이 심했다. 그래도 왕년 청춘 시절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산과 들로 쫓아다녔고, 결혼 후엔 아이들을 대동해서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난 내가 자연과 친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히 잡풀들을 들여다보면서 맘 속 깊이 기쁨을 느낀 것은, 몇 년 전 모 기관에서 ‘숲 체험’을 한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초록의 다양한 색감과 햇빛이 조화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는 여린 잎이 이렇게 매혹적일 줄 몰랐다.


내 눈은 벌써 허공을 탐색한다. 어제 한 줄기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오늘은 날씨가 제법 시원하다. 연한 푸른빛 하늘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난다. 들고 있던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드론’이다. “아! 항공촬영을 하나 보다” 시청에선 마을을 가끔 촬영해서 시설물 등 가옥의 변동을 살핀다고 한다. 이곳 삼하리가 공공택지로 지정이 되고, 혹 없던 지장물이 생겼나 싶어 시청에서 촬영을 하는 모양이다. 공공택지로 지정되고 나면 어떤 건축물도 지으면 안 된단다. 우리 가족은 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웃엔 집도 지어지고, 휑하니 누구의 밭인지도 모르게 방치되어있던 밭에서는 얼마나 활발하게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샘이 빤히 보이는 것 같다.     


잠시 멍 놓고 있던 날 남편이 부른다.

주말에 손자들이 수영하러 온다고 해서, 오전부터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차양 막 줄을 맨다고 남편을 도와 뒷 담장 밖에 나와 놓고 깜빡한 것이다. 물론, 그 덕에 풀꽃 잎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남편 혼자 이리저리 꽤 보기 좋게 수영장을 위치해 놨다. 우리 집 마당에 놓인 수영장과 차양 막의 배치가 버팀목으로 자리한 키 큰 소나무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제법 잘 설치된 것 같다. 차양 막 버팀목이 된 소나무가 어제 온 비로 목욕을 해서인지 짙은 초록의 녹음이 무척 예쁘다.     

우리 집 풍광이 오늘따라 제법 근사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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