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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Aug 12. 2023

벼룩시장의 추억

  오래전, 남편과 한 달에 한두 번 주말이면 벼룩시장을 찾았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당시 청계천 변 황학동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선 벼룩시장은 하루를 보내기에 꽤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늘어놓고 팔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과 주인을 기다리는 중고물건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헌 옷과 신발 가방 시계 레코드판 카세트 비디오테이프에서부터 골동품 그림 서화 서예 가구와 가전제품 그리고 만병통치약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물건들은 어지럽고 정신없게 늘어져 있어도, 내 머리는 오히려 맑아지고 호기심이 발현되는 즐거운 장터다. 낡은 물건 하나하나에는 나름의 사연과 역사가 있다. 그 이야기가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헌 레코드판 무더기에는 지난날 아버지께서 사 모으셨던 고복수 현인 김정구 마도로스 등 유명 옛 가수들의 노래에서부터 여고 시절 용돈을 모아 샀던 ‘가곡의 밤’도 있고 K가 선물한 ‘닐 다이아몬드’도 있었다. 레코드판을 보면서 젊은 아버지를 만나고 또 K도 만났다. 너무 낡아서 오래전 쓰레기로 버려졌을 만한 물건들도 장터 한쪽을 차지하고 있어 ‘저런 건 누가 사갈까?’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주로 민속 골동품 쪽에 관심을 가졌다. 풀무 다리미 인두 등등을 사다가 집에 인테리어를 했다. 이사를 몇 번 한 후 지금 그 물건들은 버리기는 아깝고 늘어놓기엔 지저분해 보여 벽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열심히 벼룩시장을 뒤져 사고 싶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은 하루를 투자하기에 결코 아깝지 않았으며 가격을 흥정하는 일도 재미를 더했다. 운이 좋은 날엔 꽤 괜찮은 물건을 싸게 얻어 올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영국 ‘옥스퍼드’에 갔을 때다. 마침 그날 옥스퍼드 마을에 벼룩시장이 섰다. 얼마나 반갑던지 열심히 둘러보았다. 예전에 황학동에서 만난 벼룩시장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지만, 정돈이 잘 되어 있었고 대부분 쓸만한 물건들이었다. 그곳 벼룩시장도 관광객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곳인지 관광객도 많고 동네 사람 같은 이들도 많다. 커다란 솥을 걸어두고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 도자기가 좋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터였기에 열심히 도자기 그릇 쪽을 살폈다. 너무 무거우면 가져오기 힘드니 작은 접시 위주로 보자 했다. 꽃 속에 새가 앉아있는 무늬의 접시 세 개를 붙여 놓은 듯한 모양의 작은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젓갈을 담아 먹으면 좋을 듯싶다. 가격을 물어보니 조금 비싸다. 시장을 몇 바퀴 돌며 다른 도자기를 둘러보았으나 그 접시가 눈에 아른거려 안 되겠다. 황학동 같으면 벌써 흥정했겠지만, 외국이라 망설이다가 깎기로 했다. 열심히 흥정한 결과 드디어 서로가 절충한 금액으로 구할 수 있었다. 젓갈 접시로 사용하려던 그 접시는 귀국 후 우리 집 진열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젓갈 접시로 쓰이지는 않고 있지만, 그 접시를 볼 때마다 옥스퍼드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다.     

  온라인을 이용해 물건을 사고파는 ‘당근마켓’ 같은 새로운 메커니즘이 활성화되어있는 요즈음이지만, 오래전 남편과 함께 즐겨 찾던 청계천 변 황학동 벼룩시장은 서민들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곳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정서적 휴식을 얻기에 충분했으며 소박한 정이 오고 가던 추억의 장터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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