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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Nov 12. 2022

시니어 상담 일기

갈 곳 없는 할아버지

불광역 지하 도로에 가면 벤치가 있고 그 옆엔 TV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오다가다 쉼이 필요한 분들이 시간을 보내기가 좋다.     


어르신께선 혼자 앉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시다. 외모는 남루하지만 인상은 꽤나 지적으로 보인다.     


살며시 옆에 앉았다.

“어르신 TV 재미있으신가요? 친구분 기다리시나 봐요~”

시니어 상담가 명찰을 보여드리며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는지 여쭸다. 기꺼이 옆을 허락하고 말씀을 주신다.     

연세는 86세이고 작년 아내와 사별 후 홀로 살아오셨단다. 살던 집(월셋집)에서 월세를 올리는 바람에 당장 옮길 방도 없고 해서 신사동 딸 내 집에 당분간 거처하고 있다고 하신다.

아들도 처가살이를 하고 있어서 그리로 가지도 못한다고..

당분간 거처한다고 하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는 듯 보인다.      


아내 생전에는 복지관에서 ‘컴퓨터 강의’도 들으셨단다.


딸네 집이긴 해도 종일 있기는 눈치도 보이고 미안해서, 아침 식사 후 집을 나오면 저녁에 귀가 전까지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소일하고 계시단다. 

물론, 점심 식사는 거의 거르는 날이 많다고 한다.

남루한 외모에 비해 말씀하시는 것과 풍기는 느낌이 그리 학식이 짧은 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말씀을 나누는 내내 맘이 왜 이리 짠한지, 속으로 울컥했다.     


불과 1년 전 아내와 함께 사실 때만 해도 월세방에 살면서도 복지관엘 다니던 분이었는데,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내의 빈자리가 많이 큰가 보다.     


다행히 ‘기초수급자’ 라신다.

복지관의 수급자 ‘무료 식사’를 안내해 드렸다.

딸 내 집에서 나와 소일하기 힘드신데, 복지관 프로그램도 참여하시라 안내해 드리며 무료 수강이 가능함을 알려드렸다. 


당신의 몸도 힘이 드실 연세에, 거처도 불안하고 하루를 소일하기가 이렇게 힘이 든 어르신에게, 복지관 안내를 해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고맙다시며 내가 드린 명함을 품속에 챙기는 어르신을 뒤로하며, 나의 역할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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