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골을 타고 끈적한 땀이 기분 나쁘게 흘러내린다. 해가 갈수록 새로 맞이하는 더위는 어찌 더 더운 것 같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 그런가 모든 게 다 나이 탓인 것만 같아 마음 한 편 씁쓸함은 부인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집 마당에 펌프가 있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우물이 있거나 펌프가 있는 집은 아마 없을 듯싶다. 그러나 70년대 그때만 해도 서울에도 우물이 있는 집이 더러 있었고 펌프로 개량한 집도 다수 있었다. 이사를 와서 마당에 있던 우물을 막고 펌프를 설치한 것이다. 우물보다는 더 위생적이고 조금 더 개량된 수질 관리 방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수도 시설도 있었지만, 한 여름 더위엔 마중물과 함께 땅 속에서 끌어올려진 지하수의 그 시원함은 비할 수가 없다.
마당에 커다란 고무 대야를 놓고 물을 담아 몸을 담그면 그 만한 피서가 없었다. 지금의 수영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엔 마당에서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 몸을 식히거나,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층 아파트가 없었던 시절이기에 가능했지 싶다. 한 번은 이웃에 사는 동네 오빠가 우연히 이웃집 아가씨가 마당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엿보다, 아가씨가 지르는 비명 소리에 놀라 교회당 종탑으로 숨는 바람에 동네 어른들이 모두 나서서 오빠를 찾아다닌 일이 있었다. 그 오빠가 중, 고생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사건 후, 그 오빠는 한 동안 은둔 생활을 했었다.
그 오빠도 그때 일을 기억할까? 기억한다면 어떤 맘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것 또한 그 시절을 살아낸 우리들의 추억이 아닌가 싶다.
에어컨을 켜 놓고도 선풍기를 함께 돌린다. 전기 요금이 걱정은 되지만, 여름 한 철 한 두 달만 눈 딱 감자. 이젠 에어컨의 냉기에 적응되다 보니 더위를 더 못 참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더위를 참고 싶지 않음이다.
시절이 바뀌면서 더위를 이기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펌프 물에 등목하고 몸을 담그던 그 시원함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향수인지 모르겠다. 아마, 코로나 19로 여행도 바캉스도 갈 수 없다 보니 더 그런 게 아닌가 한다. 덥다 너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