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서둘러서 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항공권을 예매했기에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갔다. 모바일 승차권으로 발급되었다는데 내가 방법을 몰랐는지 로그인이 안 되고 화면이 보이질 않는다. 겨우 안내원의 도움으로 받긴 했으나 미덥지가 않아 종이 승차권도 함께 받아놓았다. 신분증이 있어야 해서 내 것만 우선. 디지털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날로그 종이 티켓이 더 미더운 것은 무슨 심산인지, 그래도 덕분에 조금 늦게 온 정이는 내 핸드폰으로 출항 증명을 할 수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애자 언니가 도착. 캐나다에서 온 정이는 전화기 문제로 약간의 혼선이 생기는 바람에 조금 늦게 우리와 합류했다. 얼마 만인가 너무들 반가워 셋이서 부둥켜안았다. 7년 만에 만난 언니는 어쩜 늙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물론, 우리 생각이다. 젊은 시절, 어르신들이 서로 ‘너 늙지도 않고 그대로네~’ 하는 말을 들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우리도 그랬다.
딸 진이가 사줬다는 핑크 빗 천 캐리어를 들고 온 애자 언니는 우리가 아는 언니에 대한 기억을 배반하지 않았다. 소녀의 감성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또 한 번 깔깔거렸고 망토를 휘날리고 나타난 캐나다 아줌마 정이는 언니의 그 가방을 탐내 했다. 할머니가 다 된 우리는 젊은 아줌마도 아닌, 소녀가 된 듯했다.
우리는 제주도로 간다. 3박 4일 계획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희야가 있다. 제주도 여행도 즐겁겠지만, 얼마만의 회동인지 희야까지 함께 할 걸 생각하니 모두 즐거웠다.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제주도에서 함께할 시간을 기대하며 하늘을 날아갔다.
갑자기 일정에 변화가 생긴 희야와는 마지막 날 새벽에야 함께 할 수 있었다. 히야네 집은 중림에 작은 타운으로 조성되어 새로 만들어진 곳으로 서울의 고급 빌라촌을 연상시켰다. 근처에 국제학교가 있어서 서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예쁘게 조성된 마당엔 귤나무에 레몬 나무까지 자라고 있었다. 우리 네 사람은 또 한 번 부둥켜안았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어제 본 것처럼 스스럼없었다. 우린 시간을 최대한 아껴, 새벽에 만나 반딧불 축제를 여는 곳이라는 곶자왈 산책로를 걸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고, 시원한 콩나물 국밥을 아침으로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희야의 남편 미카엘 씨는 우리를 이곳저곳 설명과 더불어 안내해 주었다. 캐나다 아줌마 정이는 이곳에서 ‘일 년 살아보기’를 해 보자고 제안을 하며 우리에게 작은 다짐을 강요했다. 우리는 그럴까? 고민해 보기로 했다.
너무도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 희야와 헤어지고 공항으로 오는 길에 우린 이번 만남이 너무도 소중했음을 확인했다.
역시, 희야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한 며칠 뒤, 함께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 생활을 하자고 카톡이 왔다. 우린 모두 O.K~. 역시 희야는 우리를 성스럽게 만드는 전령사임이 틀림없다.
이번 여행은, 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야 한다는 것을, 만남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