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의 영국 작가 '레이첼 아라'
“남성 중심의 환경에서 겪었던 지속적인 성차별을 말하고 싶었다.” 오는 7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 4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 <불온한 데이터>에 참여한 영국 출신의 레이첼 아라(Rachel Ara) 작가는 자신의 출품작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This Much I’m Worth)를 이렇게 소개한다. 25년간 남성 중심의 기술·산업 분야에서 일한 경험 때문일까. 총 127개의 네온으로 구성된 전기 장치는 컴퓨터, IP 카메라, 전선들로 복잡하게 엉켜있다. 복잡한 전자장비와 거대한 스케일을 보면 작품을 제작한 작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해 들어봤다.
“공공재로서 데이터가 어떻게 예술에 적용될 수 있을까?” 전시 <불온한 데이터>가 던지는 질문이다. 이번 전시는 ‘국제 융·복합 기획전’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10개 팀, 14개 작품이 공개됐다. 전시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 아젠다로 떠오른 데이터. 여기엔 ‘빅데이터’,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 데이터와 연관된 다양한 소재들이 포함된다.
우선, 전시 제목 ‘불온한 데이터’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전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중립적’ 속성이 아니라 ‘경제, 윤리적’ 측면에 주목했다. 개인의 일상은 물론 심지어 국가 단위까지 데이터화되고 있으며 “조정할 수 없는 것은 천재지변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것이 통제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의 패러다임까지 범위를 한정짓지 못할 정도다. 한데 이 모든 변화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학자와 전문가들의 예측이 엇갈리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첨단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는 기대감과 우려가 공존한다.” 이에 미술계는 디지털 환경의 허점과 통제가 불가능한 틈새를 찾아내고, 디지털 기술의 미적 특징을 탐구함으로써 ‘예술로 재해석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인간의 삶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첨단기술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디지털 정보이자 신기술의 기본 단위인 ‘데이터’를 가공하는 범위도 눈에 띄게 다양해졌다.
“데이터를 가공, 소유, 유통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이 가진 정보를 권력화할 것인가?”
“데이터를 둘러싼 ‘맹목적인 믿음’과 ‘근거 없는 불신’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공공의 선에 기여하도록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불온한 데이터>전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앞에서도 설명했듯 디지털 기술을 탐구하고 미적 특징을 발견하기 위해 고민한다. 전시에 참여한 10팀은 데이터를 분류하고 체계화해 예술표현의 폭을 넓히거나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창조적 공공재를 확장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또한 수집된 데이터가 소수의 권력에게 독점되는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반권위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탐색하는 탈중앙화도 시도한다. 인간이 구축해온 디지털 체계와 이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틈새’를 보여준다. 필자는 <불온한 데이터>전에 참여한 한 작가, 영국 출신의 레이첼 아라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7m가 넘는 거대한 전광판에 열한 자리의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수시로 바뀌는 숫자는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조작될지 궁금했다. 수많은 전선과 전기 장치들로 복잡하게 엉켜 있는 이 작품은 붉은색 네온사인의 강렬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것도 전시장의 정중앙에 위치해 입구에서 주는 웅장함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순수예술(Fine Art)을 전공하고 지난 25년간 기술·산업 분야에서 캐비닛 제작자로 일했다. 기술자에서 전업 작가로 전향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번 출품작처럼) 디지털 메커니즘을 작품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기술자로서의 경력과 경험이 바탕이 되는가?
학교를 졸업한 후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기술 분야에서 일한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작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술·산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난 스스로를 ‘프로그래머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는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한다. 영국에는 예술가 지원 체계가 거의 없기에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작품 활동을 유지할 돈이 있거나 파트타임 일을 병행해야 한다. 작품 활동과 기술 분야의 일은 상충되는 두뇌를 사용해야 하고, 밤낮으로 신경 써야 하는 지원 계약에 걸려 있어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는 불가능했다.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30년 가까이 일한 후에야 비로소 전업작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성 중심의 환경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나 시스템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이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키웠으며 이는 나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미래의 우리는 ‘남성이 설계하고 지배하는 기술에 의존한다’는 것이 우려됐다. 기술 분야에서 일하며 이슈와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통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웠다. 캐비닛 제작자로서 받은 훈련은 손을 쓰는 창의적 작업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며, 집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집요하게 만들고 고치면서 이미 습득한 기술을 연마했다.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으로 손을 사용해 일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내 경력이 작품을 구현하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기술 분야를 벗어나서 ‘이런 이슈를 이해하려는 욕망이 작품을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퀴어에 관심이 많고, 유머와 아이러니를 결합해 사회, 정치적인 관습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본인의 가치관이나 작품과 관련해 구체적인 일화를 소개한다면?
나는 예술작품이나 이론 텍스트가 아니라 삶의 경험에서 영향을 받아 작업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남성 중심적인 산업에서 일하며 여성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그리고 힘을 잃는 모습을 보아왔다. 이 같은 경험이 나를 위협하도록 놔두기보다 그것에 관해 말해보고 싶었다. 그 나쁜 경험은 내가 논하고 해결하려는 내 작업의 영감이자 근간이 됐다. 이번 전시 출품작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작품이 구축된 방식과 거대한 크기는 남성적이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다. 이 작품은 작동하면서 기본적으로 한 세트의 숫자들을 표시한다. 작품은 물리적으로 개방되어 있지만 제어 알고리즘은 숨겨져 있다. 실제로도 기술은 명확하게 설명할 때 오히려 단순하고 논리적이 된다. 많은 남성 동료들은 자신들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똑똑해 보이려고 실제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면서 당신이 이해하기에는 기술이 너무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거대하고 가시적으로 복잡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여성으로서 던질 수 있는 하나의 성명이라 생각한다. 그런 방식에서 살짝 조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여성이 거의 없거나 배제된 산업 분야에서 일했기에 협업을 한다면 반드시 여성과 하려고 한다. 작품의 대부분은 내가 직접 제작했지만, 네온 부분은 한 여성 기술자에게 기술 도안을 주고 제작을 의뢰했다. 작품을 거는 골조가 영국에서 운송하기에는 너무 커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이자 용접기사인 조윤원 작가에게 제작을 의뢰했다. 여성 용접기사가 많지 않기에 의뢰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한국 내에서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특정 산업 분야가 있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유사한 형식의 배제가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는 ‘엔도서’라는 데이터마이닝 알고리즘을 이용해 작품의 가치를 산출한다.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와 구체적인 작동 원리가 궁금하다. 가령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값은 무엇인가?
나는 작품의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후원자들’(the endorsers)이라고 칭한다. 이는 미술계에서 공개후원(endorsement)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지적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주요 기관이 어느 작가를 공개후원한다면, 그 작가의 작품 내력이 좋아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작품의 판매가에 반영된다. 또한 명망 높은 컬렉터가 그 작가의 작품을 취득한다면, 가치는 또 한 번 오를 것이다. 우리는 통계상 미술계 안팎에서 여성의 작업이 남성의 작업보다 훨씬 과소평가된다는 사실, 그리고 주요 컬렉션과 미술관 전시에서 여성의 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하게 작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통계상으로 나타나는 차이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민족이나 성정체성과 관련해 그 통계를 찾기는 더 힘들지만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미술 시장에 규제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가치 결정의 방법론이 숨겨져 있다는 점과 미술품이 거액으로 거래되는 상품이 되면서 부정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안다. 돈세탁이라든지, 갤러리들이 특정 작가의 작품을 사재기하거나 소속 작가들을 위해 시장을 조작하는 일 등이 그렇다. 따라서 이러한 변수들을 고려해 후원자가 누구인지, 누가 이런 일들을 주도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돼온 남성 편향적 특혜를 지적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정보에 관여할 수 없기에, 한 사람이 작품의 정확한 가격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을지라도, 분석, 연구 조사, 다양한 데이터 소스의 마이닝을 기반으로 해 대략적인 가격을 산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것이다.
붉은색 네온사인은 성매매 업소의 간판을 연상시킨다. 여성 인권과 관련한 의도가 있나?
그렇다. 거대한 금속 구조물과 화살은 런던 소호의 홍등가에서 본 특정 간판이 바탕이 됐다. 그 간판은 사창가 건물 위에서 여자를 살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암시했다. 여자가 돈으로 거래된다는 사실, 이러한 관행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합법적이라는 사실, 여성의 신체에 가격이 매겨진다는 사실에 깊이 분노했다. 미술 시장의 가치 체계 안에서 여성 작가는 작업이 평가절하되는 요인이다. 이는 여성 작가에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여성 작가는 큰 작업실을 마련 할 수 없어 작품 규모에 영향을 받는다. 남자와 동일한 금액을 벌기 위해서는 더 오래 일해야 하고, 부업을 해야 하기에 작업에 쏟을 시간이 줄어든다. 미대에 다닐 때 한 강사가 수입에 보태려고 홍등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그 당시 나는 꽤 순수했다!) 남자 강사에게는 종신재직권이 있었던 반면, 여자 강사에게는 없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삶과 작업은 더욱 불안정했다.
이처럼 특정 값을 산출하는 당신의 작품은 자본 친화적인 방식이 아닐까? 경제적 가치로 표현할 수 없는 메시지, 작가의 의도, 가치관과 같은 부분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비경제적 가치들은 의도, 재료, 과정 안에서 공명한다. 이것이 조각이다. 조각은 갤러리 너머의 삶이 있다. 나는 제작 과정을 기록하고, SNS에 올리고, 토크, 워크숍, 인터뷰를 한다. 한편으로는 문제 제기이며, 이러한 이슈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위한 구실이자 도구이다.
이번 전시와 작품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작업은 매우 주관적이다. 사람마다 해석 과정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미학과 재료로부터 조금이나마 안내받을 수 있다. 나는 작품의 한국 버전을 만들기 전에 한국 문화, 페미니즘, 홍등가, 가부장제하에서 여성 작가가 겪는 어려움을 조사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 보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 여성이 가부장제하에서 겪는 공통의 문제들이 있다. 역사와 문화를 고려했을 때 한국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문제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성 작가로서의 어려움 그리고 가정폭력과 성매매와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이해를 공유한다. 그러하기에 여성의 해석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성적’ 재료와 미학을 사용한 작업이 남성의 관심을 끌고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작품 규모를 체험한 관객들이 이 작품이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격려로서 여성에 의해 구축되고 프로그래밍됐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우리가 어떻게 인간과 인간 노동에 가치를 매기는지 깊이 생각해보고, 이와 관련해 자신의 편견을 객관적으로 고민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편견이 (소수의 남성 엘리트들에 의해) 기술로 전이될 수 있는지,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지, 여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최근 영국의 유명 페미니스트 작가 재닛 윈터슨(Jeanette Winterson)은 인공지능이 여성에게 일어난 최악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시사했는데, 인공지능에 숨겨진 편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레이첼 아라는 런던 골드스미스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25년간 기술·산업 분야에서 일하며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영역을 넘나드는 설치와 조각을 제작한다. 페미니스트, 성차별, 퀴어에 관심이 많다. 2016년 에스테티카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했으며, 2018년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의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됐다. 화이트채플갤러리, 바비칸센터 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글 이규승_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사진 제공 레이첼 아라,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