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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리 Feb 12. 2020

"어디 회사 홍보 좀 해보시죠?"

페북에 담지 못할 비하인드 스토리

공식적인 회의에 열 명 남짓 자리가 놓여있다. 관공서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다 보니 책상엔 명패가 놓여 있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참석자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서로가 아는 이도, 처음 보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관련 계통에 있다 보니 저마다 일면식이 있나 보다. 서로들 아는 체한다. 어떻게 지냈어.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냐. 끝나고 차 한 잔 해요. 상투적이다. 아마 저들도 그리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닌 게 분명하다. 형식적인 말들이 오고 간다. 나는 굳이 무리에 끼고 싶지 않아서 핸드폰 속에 빠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가 되고 싶었던 한 명이 대화를 주도한다. 목소리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 단체에 소식됐다는 소개로 자신의 근황을 늘어놓는다. 관심이 1도 없는 나에게까지 그의 자랑이 귓속을 파고든다.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아 별다른 바리케이드 없이 거침없이 스며든다. 우두머리는 홀로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 내가 불쌍했나 보다. 내가 건네준 명함을 들춰다. 직함을 봤겠지. 나는 홍보와 관련된 일을 한다. 기관을 홍보하고 누군가가 진행하는 사업을 홍보한다. 그가 정적을 깨고 나에게 외마디를 던다.


"시간도 되니 어디 회사 홍보 좀 해보시죠?"


정적이 흐른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사람들이 나를 주목한다. 어떤 것을 홍보할까. 지금은 비수기라 일이 많지 않은데... 그의 구미를 당기는 소개를 해줘야 할 텐데... 고민이 늘어난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나는 회사에서 기자 대상으로 언론홍보를 한다. 그리고 시민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알린다. 대상이 기자와 시민으로 정해진 것은 아닌데 내심 홍보 타깃에 의구심이 든다. 우두머리는 별다른 의도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쁜 자가 분명하다. 물론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당신 나의 명함을 열어봤. 그리고 나에게 말을 던지고 싶었. 그리고 정적을 깨기 위해 나보고 홍보를 해보라 말했네. 그것은 나에게 "내가 멍석을 깔았으니 당신은 한번 춤을 춰보구려!"라는 꼴이다. " 무리 주도하는 빅마우스인데 당신도 들어와 보지 그래?" 이런 늬앙스. 기분이 상다. 뭐 때문인지 정확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내심 유쾌하지 않았다. 나는 퉁명스러운 말로 대꾸했다.


"대신 홍보해주시게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그도 당황하고 여기에 모인 이들도 몇몇은 당황했을 게다. 물론 우리 둘의 대화에 관심 없는 이들이 더 많았겠지만. "아니. 뭐 겸사겸사 이런 곳에서 같이 정보도 공유하고 그럼 좋겠단 뜻에서..." 우두머리의 말끝이 흐려진다. 나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쪽 계통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 덕망 있는 기관에서 관련 자문도 꽤 다. 오피니언 리더로 자신을 포장한다. 그리고 그런 것에 상당한 희열을 느끼는 부류다.


혹자는 내가 받았던 비아냥(?) 거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공적인 자리에서 회의를 하려고 갔을 뿐인데 그는 명함에 나온 직책으로 했다. 더구나 우리 사이엔 조금의 교집합없는 상태에서. 어느 술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자들이 있다고 치자. 한 명은 가수다. 다른 한 명은 교수고. 교수는 자리가 무르익자 가수에게 말한다. "분위기도 띄울 겸 노래 한 곡 뽑시죠?"


그 자리에서 나의 기분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어떤 반박이나 느낌도 말이다. 우두머리는 원하는 홍보 멘트가 아니라 "홍보해주시게?"라는 비꼼으로 나의 느낌을 알았을 모르겠다. 그와 다시 만난다면 나는 평소 궁금했던 것을 고 싶다.


"선생님. 요새 볼만한 전시 뭐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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