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하나 찍어놓으니 뭘 기록하고 싶었는지 기억이난다.
매번 저녁에 퇴근할 때 미스터로봇 엘리엇처럼 검은 후드집업의 모자까지 쓰고 애니메이션이나 익숙한 뉴에이지, 가요를 쳐주는 분이 있다. 매일 퇴근길에 곡을 쳐주셔서 잠깐 역에 머무는 시간이 참 좋다. 모든 소리를 다 틀어막고 내가 선택한 노래만을, 헤드셋을 끼고 듣다가도 이 역에서는 내 선택을 멈추고 누군가의 선택을,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된다. 한 주 내내 퇴근길을 채워 주어 나는 이제 자연스럽게 역에서 내려 한쪽 헤드셋을 살짝 귀 뒤로 올리고 피아노를 기다린다. 당연히 어느날은 그 소리가 없다. 어찌나 아쉽던지. 그렇게 요즘은 1-2분 남짓의 아주 짧은 관객이 되기를 선택하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날 아침에는 한 아주머니가 악보 4장을 쭉 펼쳐 놓고 피아노를 치고 계셨다.
그래서, 그게 너무 반갑고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좋아서 이 사진을 찍어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싶었다.
피아노 한 대의 힘. 터덜터덜 걸어 올라가는 끝없이 긴 이 깊고 깊은 역에서 이 에스컬레이터가 조금 더 천천히 올라가길, 지나치던 공간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 이 힘 말이다. 나는 잠깐의 관객의 역할을 부여 받아 여유를 찾는다.
더 좋은 건 저녁에 치는 그 청년도, 아침에 치는 아주머니도, 잠깐 스쳐간 서양인이나 또 다른 누구가도, 모두 조금은 틀리고 더듬고 거칠기도 한 피아노 소리를 낸다는 것. 이렇게나 이 사이버틱한 역에서 사람 사는 동네임을 느끼게 되다니, 사람은 사람이 사는 것을 느낄 때 사람이 되는구나를 몸소 느낀.. 뭐 그런 이야기.
덧붙여, 피아노 한 대를 두는 것이 이 역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끼니 사람을 생각하는 도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익만 추구하는 삭막하고 동떨어진 그런 것들 말고. 사람은 누구나 낭만으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일에 쏟느라 흥분한 마음과 심란한 머릿속을 진정시키고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