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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Oct 26. 2020

엄마, 기타를 배우다

기타의 기역자도 모르는 내가

  일주일에 한 번, 공동육아나눔터에서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장난감과 책 들이 가득 구비되어 있고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는 따뜻하고 화목한 공간이다. 작년 11월부터 이렇게 만남을 이어오다가 코로나 탓에 몇 달간 쉬었고, 3주 전부터 다시 문을 열어 열심히 드나들고 있다. 집에서 독박 육아를 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여럿이서 만나니 아이도 나도 즐겁다. 언젠가부터는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오랫동안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매달 주어지는 3만 원의 지원비는 아이들 촉감놀이나 미술놀이를 준비하는 데 쓰였다. 구입한 재료를 가지고 엄마와 아이들과 작품을 만들거나 자유롭게 놀아보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담당 선생님께서 "아이들 말고 엄마들을 위한 활동을 해 보면 어때요? 엄마들도 사실 육아하느라 너무 지치고 힘들잖아요. 스트레스 풀고 마음 정화할 수 있는 것들 생각해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셨다.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러나 너무나 반가운 아이디어였다. 육아나눔터이니까 당연히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만 해야 한다고 모두가 여겼던 것이다. 엄마들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다들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 보니 종류가 참 많았다. 우쿨렐레, 캘리그래피, 오카리나, 기타...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인데 집에서 육아만 하려니 오죽 답답했을까. 으이구. 나만 해도 당장 눈앞에 있는 육아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는 곧 깊은 우울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야말로 탈출구가 생긴 것이다.   


   이날 바로 오카리나를 인원수대로 주문했다. 몇 년 전 방학을 이용해 들었던 오카리나 연수 덕분에 엄마들 앞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다. 뭐든 배워 놓으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 어떤 엄마는 캘리그래피를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육아로 인해 답답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글씨를 쓰다 보면 왠지 정돈이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곧장 마트에 가서 캘리그래피 연습 노트와 붓펜 세트를 구매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는 기타를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기타 배우는 게 가능하기나 하겠어? 그리고 기타를 어디서 구해. 인원수대로 다 살 수도 없고."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다행히도 육아나눔터에 기타가 세 대나 있어서 대여할 수 있었고, 나는 남편이 몇 년 전에 사놓은(기타리스트가 되어보겠다며 큰맘 먹고 구매했으나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기타가 집에 있어서 그걸 가져오면 되었다. 교본도, 가르쳐 줄 마땅한 사람도 없으나 유튜브에 왕초보를 위한 영상이 수두룩하니 우리의 구미에 맞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될 터였다. 모든 것이 갖춰졌다.


  기타를 배우는 첫날, 빔 프로젝터로 유튜브 영상을 띄워놓고 난생처음 기타를 만져 보았다. 줄 한 번 튕겨본 적이 없어 낯설었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설렘이 훨씬 컸다. 튜닝을 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지만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날은 Am 코드 하나만 연습해 보기로 했는데 어째 영 쉽게 될 것 같지가 않다. 똑같은 영상을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다. 그럼에도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달려들어 기타 망가질까 봐, 영상에 집중 못할까 봐 걱정했으나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았다. 엄마들의 기타 연습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애들까지 도와주고, 아 이토록 완벽할 수가 있나.


  요즘 집에서 아이 재우고 난 후에 기타 연습을 하고 있다. 우리의 첫 도전곡은 김필의 '청춘'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자주 들었던 그 곡을 내가 직접 연주하게 되다니. 영상에는 '오늘 기타를 산 사람도 바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고 솔깃한 제목이 붙어있지만, 아마 우리가 끝부분까지 제대로 연주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떤가. 우리가 기타 전공자가 될 것도 아니고 어디 연주회 나갈 것도 아닌데, 그저 지금처럼 즐겁게 배우면 그걸로 된 거다. 육아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조금 욕심은 난다. 틈틈이 연습해서 크리스마스 때 남편과 아이 앞에서 한번 연주해 봐야지. 생각만 해도 멋진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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