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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Oct 26. 2020

엄마, 또 울어?

더는 참아낼 수가 없어서

  글을 쓴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 외에 딱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2년 간의 육아에서 역대 최악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깊은 한숨과 억누를 수 없는 화로 점철된, 하루가 일주일처럼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고민은 이제 그만 접어두기로 했었다. 일년 넘게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가 밥을 안 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왜 내 소중한 하루하루를 망쳐야 되지? 그게 내 잘못도 아니잖아.' 이런 질문이 불쑥 나온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나는 아이가 어쩌다 밥을 잘 먹는 날은 기분이 날아갈듯이 가볍고 나도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고, 밥에 영 관심이 없는 날은 무기력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밥에 손도 대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으니 대부분의 일상에서 나의 컨디션이 어땠을지는 더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의 식사 여부에 따라 내 기분이 결정된다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밥을 먹든 안 먹든, 나는 행복을 선택할거야!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낼 거야.' 호기롭게 다짐을 한 지 약 두 달 정도가 지났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아이가 밥을 잘 먹는 게 아니었으므로, 걱정을 거두기로 선택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나는 실제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마조마하고 늘 두려웠던 식사 시간도 제법 여유가 생겼다. 아이의 식사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내가 먹는 음식에 집중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드디어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반찬은 어느 정도 먹지만 밥에는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아이를 볼 때는 속이 터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잔소리나 화 등 감정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에, 난 내가 그럭저럭 잘 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바로 오늘, 예상치 못하게 나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신다고 해서 두 시간 정도 시댁에 아이를 맡겼다. 마침 저녁 시간이 되어 다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집에서도 밥을 안 먹는 아이가 바깥에서 잘 먹을 리가 없다. 어머니께서 흰 쌀밥과 고기와 채소 반찬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셨는데, 아이는 역시나 먹는 데 흥미가 없어 보였다. 다급한 어머님과 아버님은 밥을 좀 먹어보라며 숟가락으로 떠 주시기도 하고, 어쩌다 아이가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으면 칭찬해 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무색하게 아이는 먹으려 하지 않았고, 반찬과 밥을 손으로 조금씩 집어서 바닥에 던지기 시작하는 거였다. 아이의 행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음식 던지는 거 아니야!"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한동안 평화를 유지하던 나의 마음이 한순간 요동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안아달라고 징징대는 아이의 얼굴을 피했다. 아이가 너무 미웠기 때문이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자'던 다짐은 온데간데 없고, '이 아이는 날 왜 이렇게도 힘들게 하는 걸까. 난 언제까지 이렇게 우울하게 살아야 되는 걸까.' 짙은 우울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맥이 빠졌다. 설거지를 하다, 책을 읽어달라고 징징대며 달려오는 아이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손에 끼고 있던 고무장갑까지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아이 앞에서 가끔 울 때 지나고 나서 늘 후회를 했었는데 오늘은 눈물 몇 방울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사정없이 울었다. 


  겨우 목욕을 시키고 잠자리에 아이를 눕혔다. "엄마가 오늘 많이 화내고 소리질러서 미안해. 많이 놀랬지?" 알아듣는 건지 모르겠으나 내가 한 질문에 '응. 응' 하고 대답을 했다.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아이에게 나의 분노를 필터없이 마구 쏟아냈다는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 내 자신을 더 안아주고 싶다. 엄마로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이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느낌,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늘 제자리인 느낌... 내일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쳇바퀴 돌듯 뻔하고 똑같은 일상일 테지만, 내일도 아이가 밥을 안 먹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빈다. 오늘 실컷 울었으니 내일은 좀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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