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싫어하는 계절은 없다. 사계절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어 주어진 계절을 한껏 즐기는 편이다. 계절이 바뀌는 걸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늙은 것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공감이 되었다. 봄이 여름으로, 가을이 겨울로 변화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거나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아이와 함께 다니는 복지관 수업을 마치고 잠시 길을 걷는데 아이가 갑자기 어딘가로 뛰어갔다. 얼른 따라가 보니 샛노란 은행나무들이 서 있는 거리였다. 아이도 가을이 온 걸 반가워하는구나. 두 발로 걸어 다니고서는 처음 맞는 가을이니,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인 은행나무길은 아이에게 얼마나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을까. 빠른 발걸음으로 와 보고 싶었을 테지. 아이는 고개를 번쩍 들어 나무에 매달린 은행잎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도 아기 때 은행나무를 처음 봤을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내년 가을에는 말을 할 것이니 궁금한 가을 풍경을 보고는 '엄마 이건 뭐예요?' 하고 묻겠지. 나는 바닥에 쌓여있는 은행잎을 양손에 가득 담아서 아이 머리 위에 뿌려주었다. 아이의 밝게 웃는 표정이 노란 은행잎을 닮았다.
은행나무길을 바라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무시무시한 코로나 앞에서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구나. 참 다행이다. 코로나 괘씸한 고것이 가을까지 빼앗아갔으면 더 슬펐을 텐데. 또 다른 생각은, 이 아름다운 가을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는 아쉬움이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단풍놀이 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으니 말이다. 아쉬운 대로 집 앞의 단풍나무랑 은행나무들이라도 아이와 함께 실컷 구경하고 낙엽 치우기 전에 마구마구 밟아보아야겠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것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년 가을 가족사진에는 부디 마스크 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