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유미 Oct 27. 2020

그냥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싫어하는 걸 강요하기는 싫으니까

  매주 화요일 오전에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하고 있다. 프로그램 이름은 '오감발달 체육교실'로,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며 놀이식으로 활동할 수 있는 수업이다. 코로나 때문에 몇 달간 수업이 취소되었다가 최근에 재개되어 다시 나가고 있다. 2주 전, 수업 장소에 들어가려는데 아이가 갑자기 울면서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와서 낯설어서 그런가 해서 이날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아이가 가는 대로 따라다니며 놀았다. 계단도 오르락내리락해 보기도 하고,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이 열려 있는 곳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에도, 그리고 오늘도 아이는 여전히 수업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픈 표정으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험은 예전에도 여러 번 겪어본 것이라 익숙하기는 했는데 순간 기운이 빠졌다. 실내에서 수업하며 아이가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나도 조금이나마 편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이 짧은 시간마저도 나에게는 허용이 안 되는구나. 아 고달픈 육아. 그러나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앉힐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싫어한다고 해서 피하지 말고 어떻게든 엄마가 흥미를 유발해서 수업에 참여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 다른 곳에 가서도 자기가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며 염려하셨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바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맞춰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 자리가 무척 불편한 아이에게 엄마가 아무리 관심을 유발해봤자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폭력일지도 몰랐다. 약간은 착잡한 마음으로, 그러나 내 생각에 대한 확신으로 난 아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아이는 표정부터 밝아졌다. 난 아이가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길을 가다가 거미를 만나면 손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거미를 보여주었고, 근처 식당 앞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공원에서 매트를 넓게 펼치고는 햇볕에 무를 널고 있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무도 한 조각 얻어먹고 배시시 웃었다.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싶다. 가끔은 내가 너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놔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서형숙 님의 <엄마학교>라는 책의 영향이 큰 것 같은데, 나는 그 책을 읽는 동안 그렇게 위험한 것만 아니면 아이가 원하는 걸 하게 해 준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강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이다. 절대 억지로 뭔가를 시키지 않고 웬만하면 아이의 요구대로 하게 해 주다 보면 결국 머지않아 아이한테 질질 끌려가게 될 거라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일침을 가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이렇게 살려고 한다. 육아에 답이 어디 있겠어. 해보다가 그 방법이 아닌 것 같으면 '아, 이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하면 될 것을. 오늘 오감발달 체육수업은 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그것보다 훨씬 더 재미난 추억을 마음속에 하나 새겼을 것이다. 그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더 큰 소득일 것이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에도 가을은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