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는 어려서부터 촉감에 특히 예민했다. 네 살 때인가, 내복을 입히려는데 내복도 아무거나 입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오죽했으면 고민하던 남편이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내복에 그려주어 입히기도 했다. 아, 옷 하나 입히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육아란 무엇 하나 쉽지 않구나.
여덟 살인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요즘 옷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어 나의 스트레스도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다. 외투의 소매 부분이 좁아서 불편하다, 꽉 끼는 느낌이 싫다, 심지어 목 뒷부분에 닿는 엄지손톱 크기밖에 안 되는 상표 하나도 거슬려 한다. 잘 입던 바지도 며칠이 지나면 허리가 조여서 불편하다고 얘기하기 일쑤다. 옷장에 옷이 엄청 많은데 그 중에 아이가 입을 수 있는 것은 몇 벌 안 된다. 바쁜 아침마다 아이의 이런 하소연을 듣고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엔 이해하려고도 해 봤지만, 조금 듣다가 짜증이 난 나는 결국 아이에게 화를 버럭 내버리고 만다. "네가 옷 때문에 이럴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 받아, 정말!" 씩씩대며 시작된 하루가 온전할 리 없다.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다.
단지 옷에 대한 것만 염려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아이가 그것들을 견디고 스스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조바심 많은 엄마는 아이의 미래까지 내다보며 걱정이 앞선다. 너무 불편해서 참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조금 불편한 것들은 견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아이에게 수없이 이야기했는데 여덟 살 아이에게 납득이 되지 않았을 거다. 되려 엄마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의아해하기만 할 것 같다.
어쩌면 아이에게는 자신의 불편함을 그저 이해해 주는 엄마의 따뜻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 불편해서 신경이 쓰였겠구나. 엄마가 뭘 도와주면 될까?' 이런 말을 건네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엄마.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할 일도 많고 신경쓸 일도 태산인데 매일같이 옷으로 걸고넘어지는 아이가 나는 너무 미웠던 것이다. 마치 그 아이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으니까. 여기에 불필요하게 내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이 싫었다.
아이가 갑자기 바뀔 리는 만무할테니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렸다. 내일부터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 주려고 노력해보자. 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이니 그걸 좀 딱하게 여기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 아이의 앞날은 미리 걱정하지 말고, 아이에게 주어진 것은 아이가 살면서 헤쳐나가야 하는 부분이니 그것까지 내가 나서서 해결해주려고 하지 말자.
자식을 키울 때 남의 자식처럼 키우면 된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가 남의 자식에게 화낼 일도 없고, 지나치게 관심 가질 일도 없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서 기르는 게 최상의 육아인 것 같다. 말은 간단해도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오늘 다짐했으니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다. 넘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면 되는 법. 죄책감은 넣어두고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