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를 기르면서 특별한 목표를 정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한 가지 바람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똑똑한 아이, 다재다능한 아이보다 사회성 좋은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그 배경에는 엄마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과거에도 지금도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 무엇이든 반복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처음보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게 당연할 텐데,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째 갈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피곤하고 어색하고, 결국 '역시 혼자가 최고지'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 내가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이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였다. 내겐 너무나 큰 난제였다.
조리원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사귀는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 어린이집 엄마들과의 관계, 초등학교 엄마들과의 관계... 끝이 없었다. 나는 아이가 셋이니(내년이면 넷이 된다) 그 고민을 세 배만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
내게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놀이터. 나는 아이를 마음껏 놀게 해 주고 싶어서 하원 후에 아이가 놀이터에 가자고 하면 거의 항상 갔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엄마들 틈에 내가 끼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할 말도 없고, 그렇다고 억지로 말을 지어서 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그냥 멀뚱멀뚱 있거나 아이 옆에 가서 있곤 했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엄마들 사이에서 잘 지내야 우리 아이도 그 무리에서 잘 놀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불안감이 더 심해지곤 했다. 어느 때는 표정 관리도 안 되고, 시간이 언제 가나 시계만 쳐다본 적도 많았다. 편안하고 즐거워야 할 놀이터가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했다.
오랫동안 그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어느 날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자책하는 내가 너무 싫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내가 엄청 뭘 잘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주눅이 들어 있어야만 할까? 나는 당당해지기로 헀다.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워하는 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로 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무겁게 들고 있던 돌덩이를 그제야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아이에게 향하던 미안함과 죄책감도 과감히 버렸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억지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리하는 것에는 언제나 탈이 따르는 법이니까. 다만, 사람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이걸 깨닫고 나니 놀이터에 가는 것이 덜 두려워졌다.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보통 때 같았으면 새로운 엄마들 무리에 슬쩍 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하게 요리조리 눈치를 봤을 테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불안하지 않다. 그리고 1년 동안 초등학교 생활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느낀 것은, 엄마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에게 맞는 친구를 알아서 잘 찾아간다는 것이다. 엄마가 애써서 아이 친구를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그저 엄마로서 아이가 어떤 친구들과 노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적당한 관심을 가져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 분이 해 준 대답이 나에게 와닿았다. "아이가 꼭 사교성이 좋아야만 하나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남들과 적절히 협력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알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나는 나에게 부족한 모습을 아이에게서 채우려고 했던 건 아닐까. 공부를 못해 한이 된 엄마가 아이가 공부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아이는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구도 잘 사귀는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엄마의 욕심이 투영되었던 게 아닐까. 그게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나도 그렇게 못하면서 왜 아이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가. 아이는 엄마의 소유물이 아니라 특별한 자아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인데 말이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친구가 될 수 없어도 괜찮다. 그건 못난 엄마도, 부족한 엄마도 아니다. 이래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내가 즐겁고 내가 편안한 육아를 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편안하게 가끔 차 마시며 이야기나눌 수 있는 친구가 어느 순간 곁에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