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습진을 달고 삽니다
아파도 육아는 계속되니까
아이가 6개월쯤 되던 어느 날, 평소처럼 아이 목욕을 시키고 있는데 내 손등에 우둘투둘한 빨간 점 같은 게 보였다. 어디에 긁힌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틀 정도 지나니 신경쓰일 정도로 따끔따끔거렸다. 설거지를 하거나 아이 옷 빨래를 할 때 특히 더 빨개지고 가끔은 화끈거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손등 일부분만 증상이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새끼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까지 퍼졌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습진이구나 싶었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손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긴 하루의 육아를 마치고 가만히 내 손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구한테 얻어맏기라도 한듯 여기저기 벌개진 못난 내 손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고단하고 치열한 육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파도 병원에 가는 건 쉽지 않았다.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게 꺼려졌던 것도 있지만, 늘 아이를 먼저 챙기다 보니 피부과 진료는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아이가 조금만 열이 나고 몸에 작은 상처라도 생겼다 하면 무조건 소아과로 직행하면서도, 내 손가락에 습진이 심해져 얼얼해질 때까지도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결국 손에서 진물이 나고, 가려워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나서야 나는 피부과를 찾았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으니 연고도 함부로 바를 수가 없어 등급이 가장 낮은 연고 하나만 처방받아 집으로 왔다. 그 연고마저도 육아하다 보면 깜박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서 제때 바르지 못했다. 물을 최대한 손에 닿지 않게 하라는데 살림하는 사람에게 있어 그건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에 물을 엎지르는 통에 걸레로 매번 닦아야 하고, 설거지를 잠깐만 안하고 그대로 두면 금세 쌓여버리고 냄새가 나니 그때그때 해야 한다. 아이가 옷에다 잘 안 지워지는 음식물이라도 묻히면 곧바로 빨아야 한다. 아이가 20개월이 된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습진을 손에 달고 산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내 손이 참 예쁘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는데, 그 길쭉길쭉하고 새하얀 손은 이제 없다.
아픈 것도 잊고 쉼없이 달려오다가, 아파 넘어지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 가지 질문이 마음 속에서 올라왔다. '나는 왜 이렇게 육아에만 올인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게 최선인가?' 최선이라는 대답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모유수유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가 단유를 결심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 내가 아이라면 엄마가 많이 힘들지 않기를 바랄 것 같거든. 그래서 결심했어. 마음 편히 먹고, 분유로 갈아타기로." 우리 아이라면 어떨까. 엄마가 아픈 데 병원도 안 가고 하루 24시간 내내 옆에 꼭 붙어서 온몸을 바쳐 육아하는 것을 아이가 과연 원할까. 아이도 분명 엄마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교사로 일하며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는 말을 진리처럼 여겼는데 이 말은 육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엄마의 희생이 당연히 요구되지만, 그것은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정도까지다.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육아에 매진하는 것은 나의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나를 지독한 우울의 늪에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 캐롤 맥클라우드의 그림책『양동이 아줌마가 들려주는 날마다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모두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양동이를 들고 다닌단다. 이 양동이에는 한 가지만 담아. 좋은 생각이나 느낌을 담는 거야. 네 양동이가 가득 차 있으면 넌 아주 기분 좋고 행복할 거야. 반대로 네 양동이가 텅 비어 있으면 넌 슬프고 쓸쓸할 테지.
나는 어떻게 나의 양동이를 채울 수 있을까? 지친 하루가 끝나고 남편과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면서 서로 격려해 주기, 아이가 잘 때는 집안일은 멈추고 최대한 쉬기, 아플 때는 미루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병원 가기, 남편 퇴근 후에 아이 맡기고 외출해서 공원 산책하기, 하루의 육아가 끝난 후 고요한 거실에서 글 쓰기, 카페에서 읽고 싶었던 책 읽기. 나만의 양동이를 꽉꽉 채워서, 힘든 육아에도 지쳐 쓰러지지 않고 마음이 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습진 하나쯤 달고 살아도 '그것쯤이야' 하고 웃어 넘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