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하고 놀지?
어떻게 하면 아이와 즐겁게 놀 수 있을까
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오늘은 아이랑 뭐하고 놀까?'에 대한 걱정을 매일같이 하게 된다. 아이 반찬 걱정보다 더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또래 아이 엄마들을 만나도 꼭 빼놓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아기랑 집에 있으면 뭐하세요?'다.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나만 막막한 게 아니었어.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직장에 다닐 때는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엿가락 늘인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집에 장난감이 많이 없는 편이기도 하지만, 집에 있는 몇 가지 장난감도 아이가 금방 싫증을 내는 편이라 아이와 함께하는 그 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내야 하나 한숨부터 나온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여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자주 읽어주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몇 시간 동안 책만 읽어줄 수는 없는 노릇. 답답한 마음에 어느 날은 엄마와 아이가 쉽게 할 수 있는 놀이책 들도 잔뜩 사들였다. 그중에 몇 개라도 건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덜 걸리고 뒷정리도 간단하면서 아이가 꽤 오래 즐길 수 있는 놀이 위주로 골라서 시도해 보기도 했다. 미역이나 밀가루 등의 촉감 놀이, 쌀이나 콩 등의 곡류 만져보고 컵에 옮겨 담아 보기, 쌀과자로 케익 꾸며보기 등등.
쉬운 것들만 골라서 따라 한다고 하는데도 며칠 지나니 힘에 부쳤다. 문구점 가서 재료도 사 오고 거실에 잔뜩 늘어놓고 같이 놀려고 하는데 정작 아이는 시큰둥하고 별 관심이 없을 때 그것만큼 힘 빠지는 일도 없다. 사 온 책이 아까워서라도 며칠간 열정적으로 놀이 육아에 빠져 있다가는 나의 게으름 탓에 점점 시들해졌다. 여러 명을 상대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와 노는 것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이들은 즉각적인 리액션이 있고, 어디서 튈지 모르는 독특함과 아이들 수만큼의 다양성이 있기에 지루할 틈이 없고 따라서 수업 준비할 맛이 난다. 그러나 아직 어려서 웃거나 울거나 떼쓰는 것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한다는 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고난도 미션이다. 게다가 놀이를 준비할 때 아이 취향 저격에 실패한 적이 많아 자신감도 상실한 상태였다. 나는 어느 날부터 놀잇거리를 준비하지 않게 되었다.
걷기가 익숙해지고 점점 걸음이 빨라진 아이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매일 종종거리며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누워있고 기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집 안에서도 부엌, 안방, 작은방, 화장실, 드레스룸 안쪽 구석구석까지 곳곳을 잘도 누비고 다녔다. 아이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이 놀이도구가 되었다. 부엌 수납장을 열어 냄비를 꺼내고 국자로 탁탁 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악기가 되었고, 반찬통을 여러 개씩 쌓고는 와르르 무너지는 걸 보고 웃기도 했다. 비닐봉지를 가득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발로 마구 밟을 때 나는 소리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또 아이는 일등 가는 따라쟁이라서 엄마가 설거지할 때 끼던 고무장갑을 손에 껴 보고는 신난다고 까르르 웃었다. 엄마가 빨래를 널 때 옆에 와서는 젖은 옷을 손에 들고 건조대에 어설프게 하나씩 올려놓고는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요리하고 남은 무를 대충 썰어서 탑을 쌓아 보기도 하고, 민들레 홀씨를 후 불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나는 아무것도 놀잇거리를 준비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아이가 더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 눈에는 단순히 생활용품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물건들이 아이에게는 너무나 새롭고 신기한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 눈앞에 장난감들이 무수히 널려 있었는데 나는 마트랑 온라인 마켓만 연신 들락거리며 아이에게 줄 놀잇감들을 찾고 다녔던 거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 준비를 하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대단한 뭔가를 잔뜩 준비하고, 자극적인 놀이나 활동을 해야 아이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나서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과한 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주변의 것들을 탐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에게는 버튼을 누르면 기계음이 나오고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값비싼 장난감보다는 숟가락으로 부엌의 그릇과 접시들을 직접 두들겨 보며 듣는 소리가 훨씬 재밌고, 작은 이불 하나도 아이에게는 멋집 비밀의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우리 아이는 유모차 버클 채우는 데 취미를 붙였다. 내가 하면 1초면 되는 그것을 아이는 이리 돌려보고 저리 끼워보고 한참을 낑낑대다가 드디어 딸깍 소리가 나며 버클이 채워지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웃는다. 이 순간에 아이에게는 이게 세상 무엇보다 재밌는 놀이인 것이다. 내가 방해할 이유가 없다. 그저 지켜봐줄 뿐이다.
육아는 언제나 내 예상을 비껴간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 때로는 당연하지 않음을, 확신했던 것들이 정확히 틀릴 때도 있다는 것을 아이가 내게 가르쳐 준다. 오늘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에서 풍선 놀이를 했는데, 아이들이 활동 마지막에 스스로 풍선을 터뜨려 볼 것이라는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엄마가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 아이는 겁이 많아서 못해요. 그냥 다른 아이들 하는 것만 볼게요.'라고 했다. 나도 내심 우리 아이가 풍선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 진짜 풍선을 터뜨릴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프로그램에 참여한 세 아이들 모두 엄마들 보란 듯이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긴 젓가락을 들고 풍선을 터뜨리고는 까르르 웃는 게 아닌가.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행동에 엄마들 모두 깜짝 놀랐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미리 결정하고 차단하고 규정짓는 것들이 사실 얼마나 많은지. 어른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아이 자체를 존중하고 아이가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기ㅡ아이와의 놀이를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