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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Jul 26. 2020

저 다이어트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살과의 전쟁 시작

   어렸을 때부터 20대 중후반까지 나는 꽤 마른 편이었다. 그때도 먹성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만큼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 편이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자주 받곤 했다. 아무리 먹어도 살찔 걱정이 없다는 것은 먹는 즐거움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에게 엄청난 축복이었다. 야식을 먹고 싶으면 먹고, 둘 중에 뭐 먹을까 고민이 될 때는 둘 다 먹으면 그만이었다. 칼로리를 따져가며 점심 메뉴를 골라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다이어트는 나와는 영 거리가 먼, 아니 평생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단어였다. 직장 생활을 하며 삼십 대에 접어들 무렵, 몸이 예전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전보다는 몸이 조금 무거워진 듯하고 군데군데 살이 붙은 것 같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봐줄만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살 잘 안 찌는 체질이니까 체중이 늘어봐야 얼마나 늘겠어. 괜찮아.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아도 좋아하는 음식 먹으면 신기하게도 싹 내려갔다. 난 원래 그렇게 단순한 인간이었다. 적어도 음식 앞에서는.


   임신했을 때는 체중이 20kg 가까이 늘었다. 다행히 입덧이 없었고, 임신 중이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당당히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므로, 내가 그 특권을 놓칠 리 없었다. 줄기차게 먹고 또 먹었다. 출산을 하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그간 찐 살들이 조금씩 빠지고 원래의 모습을 서서히 되찾아가는 듯했다. 모유 수유는 산모에게 최고의 다이어트라는데 아기에게 영양가 있는 모유도 먹이고 체중도 줄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문제는 17개월 간의 모유 수유 대장정을 마친 그 다음에 찾아왔다. 육아 때문에 매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며 내 몸 하나 돌볼 틈 없이 살아가는 동안 몸 여기저기에 살이 찌기 시작했다. 출산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임산부라고 착각할 정도로 배가 불룩했다. 어느 날 집 앞을 지나는데 필라테스 간판이 보였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필라테스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상담을 받고 신청서를 썼다. 강사님이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지금 몸이 관리가 많이 안 되어 있으세요.' 돌직구를 날렸다. 아, 내가 너무 오랫동안 내 몸을 방치해 왔구나. 그래, 내 몸은 이제 관리가 필요한 거였다. 그것도 아주 고도의 체계적인 관리가.


   운동 첫 날, 쫙 달라붙은 필라테스복을 입고서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뚱뚱하고 못생긴 아줌마 한 명이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게으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은 늘어진 뱃살, 여기저기 튀어나온 옆구리 살, 터질 것 같은 허벅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내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였나? 예전에 울룩불룩하게 옆구리살이 삐져 나온 아주머니들을 볼 때면, 아무리 육아가 힘들고 운동할 시간이 없더라도 저렇게 살찌지는 말아야지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탄탄한 몸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관리는 철저하게 해서 내가 본 내 모습이 부끄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같이 몸매가 날씬한 회원들과 초라한 나를 비교해 보자니 나는 얼른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지금이라도 환불을 할까? 필라테스에 온 게 살짝 후회도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늦기 전에 불편한 나를 마주하고 현재의 부족한 나를 긍정적으로 바꾸어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다행이기도 했다.


   나는 나름대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여겨왔으나 다이어트에서만큼은 그 의지가 너무도 쉽게 꺾이곤 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하는데,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하니 성공할 리가 없다. 나에게 먹을 것을 뺏는다는 건 그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육아의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면서 하루종일 애 보느라 고생했는데 이 정도 먹을 자격은 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니, 이 관행을 끊으려면 분명 녹록지 않은 시간들을 오랫동안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부터 나는 다이어트를 독하게 시작하기로 했다. 그저 체중을 줄이고 살만 빼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육아를 하며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쓸데없는 잡념들과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을 덜어내고 가벼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주 2회 필라테스, 매일 17층까지 계단오르기, 주3회 런닝머신과 복근운동. 육아를 하며, 육아가 아닌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 설렘이 반갑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내 안의 힘을 끌어모아본다. 변화에는 늘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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