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랑 무슨 책 읽을까?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책읽기
어렸을 적에 나는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집에 책이 많이 없기도 했지만, 아마도 책의 즐거움을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깊은 재미를 느껴본 적이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분명 책과 서점과 도서관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에 몰입하는 친구들을 옆에서 볼 때면, 책읽는 기쁨이란 게 과연 어떤 느낌일까 몹시 궁금했다. 책이란 것은 나에게 독후감 쓰는 숙제가 있을 때만 억지로 대충 넘겨보던, 재미없고 따분한 존재였다. 내가 가 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그러나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스무 살이 되어 대학 도서관에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한다.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에 그야말로 압도당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책이 많단 말이야? 이 책은 다 누가 쓰고 누가 빌려 읽는 거지? 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동안 동네 서점이나 도서관만 가 보았으니, 나에게 대학 도서관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았다. 도서관 풍경에서 느껴지던 아우라가 지금도 생생하다.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보상 심리일까, 나는 그 후로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었다. 강의들 사이에 비는 시간이 있을 때, 약속시간이 남았을 때, 심심할 때, 아무때나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가 사이를 서성거리며 눈으로 책들을 훑고 있으면 불안하거나 불편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벼운 에세이나 자기 계발 서적부터,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두꺼워서 그동안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소설까지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이 바뀌고 마음 상태가 달라져 내가 전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믿음이 어느 순간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내가 지금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이유다.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만약 내가 어렸을 때부터 책의 기쁨을 알고 살았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더 넓은 세상을 마음껏 꿈꾸고 상상하며 좀 더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려서부터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왔었다.
아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매일 조금씩 책을 읽어주었다. 육아 물품 정보에는 빠삭하지 못한 나지만, 아이의 수준에 맞는 좋은 책을 고르는 데는 누구보다도 부지런을 떨었다.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보고 북스타트 추천도서들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이가 나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직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눈과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똑같은 책을 매일 반복해서 읽으면 지루할 법도 한데, 아이는 마치 오늘 처음 읽는 것처럼 늘 생동감 있는 리액션을 보여준다.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에 자주 오면 도서관이 내집처럼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가 9개월이 되었을 때는 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도서관에 데려가 책을 직접 만져 보게 하고 아이가 고른 책을 함께 읽었다. 돌 전에는 단순한 사물과 그림 위주의 책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아이가 조금 크다 보니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있는 책도 볼 수 있고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나도 책을 선택하고 읽는 데 좀 더 재미가 생겼다. 어떤 그림책은 내용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울림을 주는 경우도 있어서 나도 읽으면서 공부가 된다. 오늘 아이와 함께 읽은 고혜진 작가의『어느 여름날』이 특히 그랬다.
코로나는 일상 곳곳에 비집고 들어와 우리 삶을 흔들어 놓는다. 도서관에 마스크 쓰고 손 소독제 뿌리고 들어갔다가 책만 얼른 빌리고 도망치듯 나와야 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도서관에서 온종일 놀며 아이와 책을 읽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랬듯 나의 아이에게도 책이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도 굳건히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커다란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