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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Aug 13. 2020

야식보다 글쓰기가 좋아요

나에게 글쓰기의 의미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글 쓰는 것에 큰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내가 즐기는 일 중의 하나였다. 먼 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학교에서 아이들이나 학부모 때문에 열 받는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았을 때 난 어김없이 일기장을 펴 놓고 글을 쓰곤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그러나 꼭 한번쯤은 꺼내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쓰다 보면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없이 마구 요동쳤던 내 감정들도 차츰 제자리를 되찾고 차분해지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 무엇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짚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 제시도 해 보게 되었다. 글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받아주고 위로해 주는 힘. 가족, 친구, 그 누구도 글쓰기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난 언젠가부터 외출할 때 항상 노트와 펜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라도 빠뜨리고 나온 날에는 내내 불안했다.

   

   육아를 하면서 한동안 글쓰기를 잊고 살았다. 24시간 아이에게 맞춰진 엄마의 삶에 글쓰기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시간이 나면 밀린 집안일을 해야 했고, 내일을 위해 빨리 잠들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리며 내 시간을 가지며 늦게 잠들면 다음날 육아에 차질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천근만근인 몸으로 아이를 돌보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이날 하루는 엉망이 돼버리기 일쑤였다. 아이가 17개월이 될 때까지 나는 그냥 기계처럼 살았다. 아이가 배고파 울면 젖을 물리고, 밥때가 되면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와 같이 놀다가 잘 때가 되면 재우고. 엄마로서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마음 한구석이 늘 비어 있었던 시간들. 깊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왜 육아만 하다 늘 이렇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 거지?' '왜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는 걸까? 이 답답한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지?'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우울모드에 접어들었으니 나는 아예 스스로 생각의 문을 닫아버렸다.  엄마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거겠지, 나만 그런 거 아니니 크게 억울해 하지 말자, 엄마가 된 이상 받아들여야지 별수있겠어, 라고 체념하면서 말이다.   


   나를 보지 못하고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했던 육아는 내게 고단함과 억울함을 안겨주었다. 육아의 탈출구가 필요했다. 출산 전에는 가끔 혼자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서 힐링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곤 했었으나, 아이에게 매여 있는 엄마에게 나홀로 여행은 너무나도 낯선 단어였다. 여행 말고, 매일매일의 육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불현듯 머릿속에 탁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라면 전쟁같은 육아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해줄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모유수유를 끝낸 17개월부터 글을 썼다. 하루를 지내면서 아이와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정리해 보기도 하고 시댁에 서운했던 일들, 남편 때문에 화났던 감정들, 주말에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들, 그리고 뭘 이런 것까지 쓰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도 내가 쓰고 싶으면 모두 적었다. 글이란 것은 참 신기했다. 글을 쓴다고 해서 고민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쓰다 보면 묘안이 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글을 다 쓰고 나면 그 고민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든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육아로 너덜너덜해진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두 달을 글을 쓰다 보니,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이가 떼를 써서 힘들게 하거나 또다른 이유로 육아가 너무 버거워질 때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아. 이따가 아이 재우고 밤에 글 쓰면 돼.' 이 정도면 제대로된 탈출구다. 

   

   요즘 나의 삶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단연 육아와 글쓰기다. 내가 사랑하는 야식(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있으니 '사랑했던'으로 바꾸어야겠다)보다도 글쓰기가 더 좋다. 나에게 글쓰기는 육아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를 건져내어 잠시나마 따뜻한 햇살을 쬐게 해 주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지체없이 육아로 돌입해야 하지만, 글쓰기에서 받은 에너지로 또 하루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으니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육아로 너무 힘이 드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일단 쓰세요. 쓰고 나면 분명 달라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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