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워보면 너도 알게 될거야

이제야 이해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by 장유미

교직 생활 8년이 채 안 되어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학교 생활을 하며 몇몇의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할 때 동료 선생님들께서 자주 해 주시던 말씀이 있다. "선생님, 나중에 아이 키워보면 애들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예요." 우리 엄마도 내가 학교 아이들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너 다음에 네 애 길러보면 알거야. 육아휴직 끝나고 학교에 돌아가면 아마 아이들 보는 눈빛부터 달라질걸?" 나는 항상 궁금했다. 그 말이 사실일까.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 친구들은 나한테 참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나의 모범적인 기질은 언제나 남 앞에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교사의 특성에 너무나 잘 부합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이 그것이 마냥 좋은 점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도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적 없는 도덕책 같은 삶을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다양한 유형의 아이들을 끌어안는 것은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이유없이 친구들을 괴롭히고 선생님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내뱉는 아이들,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교사를 대하는 학부모들은 내 선에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를 상대해야 할 때 나는 내 앞에 벽이 생긴 것처럼 막막함을 느꼈다. 똑같은 얘기를 여러 번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몇 번을 말해?" 하며 한숨을 내쉬었고, 수업 시간에 집중 못 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중 하나였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대로, 자로 잰 듯 바른 길만 걸어온 선생님보다는 학창 시절에 일탈도 해 보고 많이 놀아보고 고생도 좀 해 본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기에 적격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조금 서글퍼졌다.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열 달을 곱게 품은 아이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나는 이미 깨달았다. 그동안 나를 거쳐간 수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를, 그리고 그 아이들을 키워낸 부모들은 또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가를. 학교 활동을 하다 아이가 다쳤을 때 내가 배운대로 대응 메뉴얼을 따라 대처했을 뿐, 아이와 부모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맞벌이라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며 돌봄교실에 자신의 아이를 우선적으로 넣어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 엄마를 '학교 규정' 운운하며 차갑게 사무적으로 대했던 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규정은 규정이더라도 좀 더 따뜻한 말투로 어루만져줄 수도 있었을 텐데, 열정만 있고 똑똑한 척만 했지 공감과 이해는 턱없이 부족했던 지난날이었다.


예전의 나는 나와 갈등을 빚는 학생들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부모 탓으로 돌리곤 했다. 아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할 때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부모를 향한 원망 섞인 질문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부모마다 각기 사정이 있었을 테고 내가 모르는 어떤 상황이 존재했을 수도 있는데 그 가능성은 배제한 채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제멋대로 판단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가 오랜 시간 아이에게 들였을 노력과 사랑의 깊이는 헤아리지 못한 채, 단편적인 사실만 가지고 감히 부모 자격을 논했었다. 교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부모가 이런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삐딱한 태도를 취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21개월 간의 전쟁같은 육아를 하며 느낀다. 어떤 엄마도 아이를 대충 키우고 싶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가장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이고 최선의 것을 주고 싶어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모든 부모의 기본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육아를 하며 제일 많이 느끼는 것이 '애가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적절한 양의 밥을 먹도록 하는 것, 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것, 바닥에 물 쏟지 않는 것, 배변훈련(이외에도 너무 많아 다 적지 못하겠다) 등등 내가 목표로 하는 지점과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에는 간격이 너무 크다. 그게 어디 지금뿐일까. 아이가 자아를 형성하고 고집이 생기면서 엄마 말 안 듣는 것은 여전할 것이다. 아이를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부모 말, 선생님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역성을 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편견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다. 육아를 해 보니 그게 얼마나 그릇된 생각인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언제쯤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길고 긴 육아휴직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될 나의 학교 생활에는 어떤 하루들이 펼쳐질까. 1년 사이에도 많은 것들이 급변하는데 몇 년을 쉬었다 돌아온 나에게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설 거다. 그러나 바뀐 환경에야 언제고 적응할 수 있을 테고 나름대로 노력하다 보면 예전의 감을 찾을 수도 있을 거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지금의 나의 육아 경험이 그저 나를 지치고 힘들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영양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휴직 기간이 단순히 일을 쉬는 의미로서의 경력 단절 기간이 아니라, 교사로서의 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육아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든 결국 모두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기에, 아이를 기르면서 얻는 깨달음이 내가 만날 아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거다. 육아를 하느라 '휴직'을 했지만, 매일 고군분투하며 인생을 '배우고' 있다. 깨지고 다치며 울며 배우는 중이지만, 그 배움의 끝에는 분명 성장이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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