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좀 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쌓이면 병 된다

by 장유미

나는 그동안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누가 그리 살라고 명령한 적도 없는데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도 '유미는 참 착해'였다. 그것이 나를 규정짓는 가장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해 왔고, 애석하게도 난 그 평가가 나에 대한 칭찬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착하다는 것은 배려심이 많다는 것과 다름 아닌 말이며, 배려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내 의견은 드러내지 않고 늘 남에게 맞춰준다는 뜻이었다. 남에게 양보하고 웃어주고 때로는 부담스러운 남들의 부탁에도 무리하면서까지 응해주는 사람. 그래서 남들은 나를 좋아했을지 몰라도, 내 삶은 참 고되고 힘들었다. 그럼 난 왜 그렇게 착하게 살았던 걸까? 아마도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 컴플렉스에 빠져서, 나의 욕구나 필요는 무시한 채 남들에게만 끌려가는 그런 삶.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도 즐겁기보다는 지치고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거절하고 싶으면 거절해도 되는데,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데, 나는 내 것을 모두 내어주고 부당한 경우에도 애써 괜찮은 척 웃음을 보이며 그렇게 착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남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의 착한 기질은 여전했다. 좋은 며느리이고 싶었고, 남편에게 좋은 아내이고 싶었다. 화목함을 위해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갈등을 유발하거나 잡음이 생기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서운하고 속상한 일이 생겨도 참고 삭히게 되었다. 끊임없이 내 안의 나와 대화하면서, 나를 서운하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아니 이해해야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지치는 육아 속에서 마음의 응어리만 생기고 날카로워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나는 무엇 때문에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하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존중받지 못했던 내 감정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서운한 감정을 남편에게 말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웠다. 내 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본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손과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내 감정과 함께 앞으로 내가 원하는 바까지 말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육아로 너무 지치고 힘들다. 그러니 저녁 시간에는 내 자유 시간을 두 시간 정도 보장해 주었으면 좋겠다', '난 당신이 일방적으로 뭔가를 결정하는 것에 화가 난다. 시댁에 언제 갈지, 어떤 물건을 살지, 이런 것들은 나랑 먼저 상의 후 결정하면 좋겠다'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연습을 하다 보니 점점 더 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다 보니 내 안의 화가 덜 쌓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착한 며느리, 착한 아내가 되고 싶지 않다. 남들에게 맞추다 내 인생을 희생하고 뭉개버리고 싶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혜민스님이 말씀하신 '나 자신에게 가장 착한 사람이 되세요!' 이걸 꼭 기억해야겠다. 난 과거의 나, 지금의 나보다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렇게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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