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100일을 맞았을 때였다. 백일 사진 하나는 멋지게 찍어 기념 액자로 만들어 두고 싶어서 아이를 데리고 동네 사진관을 찾았다.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사장님은 아이 성장 앨범 패키지를 안내해 주셨다. 백일 사진, 돌 사진, 가족사진 등등 여러 사진을 모아 액자와 두툼한 앨범을 만들어주는 작업이었다. 사장님은 행사 때마다 따로 찍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경제적이라며 패키지를 선택할 것을 우리 부부에게 슬쩍 제안했다. 금액은 무려 50만 원. 사진관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니 솔깃하기는 했다. 사진사의 사진 기술에다 뛰어난 보정 기술까지 더하면 남부러울 것 없이 멋진 사진들을 손안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우린 결국 패키지는 하지 않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남편과 함께 도란도란 대화를 하다가 낮에 갔었던 사진관 얘기가 나왔다. 돈 좀 들이고 사진관에서 고퀄리티의 사진을 찍을 것인가 다른 방법을 택할 것인가. 물론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선택의 문제였다. 육아의 모든 질문들이 그렇듯, 이것 역시 부모의 주관과 철학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아까 사진관에서 보았던 사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깨끗하고 정갈한 의상, 화사한 분위기, 예쁜 스튜디오 인테리어 소품들, 멋지게 메이크업한 엄마 아빠의 모습... 단란해 보이는 가정의 그야말로 '완벽한' 사진들이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이나 거실 액자에 넣어두면 참 뿌듯할 만한 그런 사진 말이다. 그런데 남들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배경, 똑같은 포즈로 찍은 그 사진들은 뭔가 매력이 없어 보였다. 우리들만의 이야기는 쏙 빠진, 겉만 화려한 포장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서재방에 묵혀 두었던 카메라를 꺼냈다. 9년 전 큰맘 먹고 구입한 DSLR인데, 내가 꽤 아끼는 물건이었으나 출산하고 육아하느라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었다. 우리는 고가의 성장 앨범 대신, 나의 부족한 사진 기술로 인해 퀄리티는 매우 떨어지겠지만 우리의 소중한 하루하루들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셀프 앨범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지 가득한 카메라가 비로소 빛을 발할 때였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아이의 작은 일상을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 뒤집기를 시작한 경이로운 순간, 조심조심 첫걸음을 떼던 날, 할머니 품에 안겨 낮잠 자던 어느 날 오후, 처음 꽃을 보고 꽃잎을 만져 보던 날... 아이의 수많은 처음과 소소한 일상들을 그렇게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아이가 첫돌이 되었을 즈음,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인화해서 앨범에 넣어 두었다. 그 귀중한 앨범은 지금 우리 집 거실 책꽂이 한쪽에 꽂혀 있다.
아이는 심심할 때마다 앨범을 열어 사진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추억에 젖는다. 불과 1년이 좀 더 지났을 뿐인데 아주 옛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만큼 아이는 빨리 자란다. 이렇게 가만히 누워서 모빌만 쳐다보던 시절도 있었지, 이 때는 이가 두 개만 났었네, 하며 사진이 데려다준 추억 속으로 잠시 빠져본다.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머릿속에 흐릿한 기억으로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아이와 나의 일상들. 이 작은 앨범이 지금뿐 아니라 10년, 20년, 그 후에도 지난날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 상자가 되어 줄 거다.
우리 집에 왔던 누군가는 이 앨범을 보며 너무 허접한 거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었다. 근데 나는 앞으로도 이런 앨범을 해마다 만들 생각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이랑 집에서 뒹굴고 놀다가도 '어머, 이건 찍어야 돼!' 하면서 얼른 카메라를 가지고 오는 때도 많다. 물론 가끔은 귀찮기도 하다. 초점이 안 맞아 흔들리는 사진도 많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를 찍느라 원하는 컷을 얻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내가 사진 전문가도 아니고, 어디 출품할 것도 아닌데 퀄리티가 뭐 그리 큰 문제일까 싶다.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그저 열심히 찍을 뿐이다. 올해 말에는 또 어떤 사진들로 앨범을 가득 채우게 될까 설렌다. 쌓이는 사진들만큼 추억들도 그렇게 하나 둘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