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금살금 말고 저벅저벅 걷는 삶이길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옹알이를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부르고, 넘어질까 봐 조심조심 첫 발을 떼더니 이제는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쑥쑥 커가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는 엄마로서의 바람이 하나 둘 생길 때가 있다. 물론 아이의 삶이라는 고유한 영역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터치할 수는 없지만, 몇십 년 먼저 인생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좀 더 나은 방향을 안내해 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36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는 참으로 조심스럽고 걱정 많은 사람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수많은 걱정을 짊어지느라 늘 어깨가 무거웠다. 조바심이 많았고 매 순간 실수할까 두려웠다. 아이들 앞에서는 '실수해도 돼.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말하는 내가 그렇게 이중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나의 성향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후회했을 때는 이미 기회가 저 멀리 건너간 후였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 자책하며 나약해지는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 나는 온갖 이유들을 갖다 붙이며 '어차피 안 되는 거였어. 그리고 기회는 다음에 또 있을 거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나중에 찾아온 기회 역시 붙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 스스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답답하지만 벗어나지 못했던, 비슷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2016년부터 나는 춘천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꿀 같은 휴식을 반납하고 방학마다 한 달씩 춘천에 머물며 그림책 공부를 했다. 그때 만났던 한 교수님은 말하는 데에 거침이 없고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넌 너무 자신감이 없어." 나의 약한 부분을 마주하는 일은 꽤 낯설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오래도록 나는 자신감 없고 소극적인 내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옆으로 밀어 두고, 미해결 된 과제처럼 내 안에 남겨 두었다. 나를 꿰뚫어 보고 날카롭게 날린 그분의 한마디는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나뿐인 내 삶을 이렇게 심심하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외침이 내 안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내가 다시 작아지려고 할 때마다 나는 장영희 님의 위 문장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곤 한다. 실패할까 봐,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눈치 보며 조심조심 걷던 과거의 나를 뒤로 하고 팔을 힘차게 휘저으며 씩씩하게 걷는 과장된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며 어깨가 펴지고 눈빛도 선명해진다. 넘어져봤자 무릎이 까지고 상처 나는 것 외에 뭐가 더 있겠어. 무엇이 무서워 그동안 그리 움츠리며 살았을까. 당당함의 대명사 뮤지컬 배우 박해미 님의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저는 늘 당당하게 살았어요. 어떤 선택을 하고 실패를 하면 '아, 이 길이 아니네.' 하고 돌아 나와 또 다른 길로 갔어요. 어떤 것도 회피하거나 숨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 인생에 후회가 없어요."
누군가 넘어질 게 무서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데 두려움에 떤다면 그 사람은 안전할지는 몰라도 삶이 얼마나 단조로울까. 미국의 교육자 John A. Shedd는 말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고. 앞으로 펼쳐질 우리 아이의 인생은 살금살금, 조심조심이 아니라 성큼성큼, 저벅저벅 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이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고, 훨씬 풍성하고 멋진 삶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