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비 맞으러 밖에 나가요!

비가 놀이가 되다

by 장유미

우리 아이는 비를 유독 좋아한다. 며칠동안 엄청난 폭우가 내리고 있으니, 남들에게는 지겹고 원망스러운 비일지언정 우리 아이에게 비 오는 바깥은 신 나는 놀이터인 셈이다. 오늘은 오전에 아이와 함께하는 수업이 있어서 집 근처 센터에 갔다. 오늘 수업은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그림책을 읽고 색색의 클레이을 갖고 노는 촉감놀이로 진행되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아이가 신발장으로 가더니 신발을 손에 들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나가고 싶다는 신호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서 수업에 참여하도록 할 것인가, 아이의 요구대로 밖에 데리고 나갈 것인가. 솔직히 짜증도 났다. 수업에 가려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면서 비를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촉감놀이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니 말이다. 엄마와 함께 클레이를 조물조물하며 즐겁게 노는 다른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더 속이 상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나는 결국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을 펴서 비를 느껴보고, 웅덩이에 풍덩 발을 담가보았다. 아이를 쫓아다니며 우산을 씌워주던 나는 이내 우산을 접어 버리고 아이와 함께 비를 맞기로 했다. 자주 보는 꽃과 나무들인데도, 아이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비를 머금은 식물들, 물방울을 매단 놀이터의 그네와 시소는 아이에게 새로운 세계 그 자체인가 보다. 아이는 이파리 위에 송송 맺힌 물방울, 땅 위의 작은 개미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본 뒤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니 이미 수업은 끝나 있었다. 아이들은 클레이로 오물조물 만든 물고기와 거북을 손에 들고 엄마와 함께 집에 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어떤 엄마는 우리 아이가 지난 주에도 수업 중에 밖에 나가더니 오늘 또 수업에 참여를 못해서 어떡하냐고 걱정을 했다. 혹시나 사람들이 나를 아이 하나 통제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나약한 엄마로 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좋은 선택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억지로 아이를 자리에 앉혀놓고 클레이를 만져보게 하고 이것저것 만들어 보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수업에 참여를 잘 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리라. 비록 이 날 수업에는 충실하지 못했지만, 아이가 원하는 바깥활동을 함께 하면서 아이가 온전히 비를 느껴보고 호기심을 충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훨씬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내가 아이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안에만 데리고 있으려고 했다면 분명히 아이는 나에게, 나는 아이에게 불만이 쌓여갔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이와 그동안 비에 관한 그림책을 자주 읽었었다. 『비 오는 날 생긴 일』(조히), 『비오니까 참 좋다』(오나리 유코), 『비 오는 날의 소풍』(가브리엘 뱅상) 이 세 권을 아이가 특히 좋아했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또는 비오는 날 소풍을 즐기며 놀이를 한 후 또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잘 그려낸 이야기인데, 그림책 속에서 마음껏 비 여행을 한 우리 아이가 실제 비를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갑고 설레고 신 나지 않았을까.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우리도 이 친구처럼 비 오면 엄마랑 재밌게 놀자'고 약속해 놓고 막상 비 오는 날이 되면 옷 더러워진다고, 감기 걸린다고, 춥다고 아이의 호기심을 차단해 버린다면 그것 참 모순이 아닌가. 어쩌면 아이에게는 옷에 묻은 빗물을 털어주고 우산으로 비를 막아주는 엄마보다는,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 우산 따위는 던져버리고 빗속으로 들어가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런 어른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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