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집을 안 치우기로 했습니다

집안일은 잠시 미뤄두기

by 장유미

우리 집은 난장판이다. 매일같이 아이가 집안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느라 그 어느 곳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곳이 없다. 드레스룸은 폭격을 맞은 듯하고, 조용히 책을 읽고자 꾸며 놓았던 서재방은 서재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잡동사니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한방 중에 곤히 자고 일어난 아이는 밤새 충전된 에너지로 활개를 친다. 손에 닿는 것은 모두 만져 보아야 하고, 손에 닿지 않는 것은 의자에 올라가서라도 기어이 한번 흩뜨려보아야 하고,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들은 무조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뒷수습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아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남겨놓은 흔적들을 지우고 정리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어질러 놓은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사인펜이나 볼펜으로 매트에 낙서를 해서 복구 불가능으로 만들어 놓을 때면 내 짜증은 배가 된다.


평소처럼 집안일과 씨름하며 녹초가 되어버린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드니 앞으로는 집안일을 조금 내려놓겠다고. 하루 종일 밖에서 일과 사람에 시달리다 집에 들어온 남편이 정리 안 된 지저분한 집을 보는 게 달가울 리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살아야겠는데.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쉬는 시간인데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보장받고 싶었다. 달콤한 휴식 시간을 집안일에 빼앗겨버리고 싶지 않았다. 조급증이 장착되어 있는 나에게 조금 느슨한 삶의 여유를 가지는 게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빨랫감이 조금 쌓이더라도 꼭 해야 하는 시점까지는 좀 미뤄두고, 방바닥에 먼지가 좀 보이더라도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질러 놓은 것은 바로바로 치우지 말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기 전에 딱 한 번만 치우면 된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예전에는 아이가 물건을 쏟고 어지를 때마다 '저걸 또 언제 치우지?' 하고 짜증이 확 올라왔다면, 마음을 바꾸고 나니 아이가 아무리 집을 지저분하게 해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밤에 한 번만 치우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찰보리나 검은콩과 같이 뒷정리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들을 한 바구니 가지고 와서 아이와 함께 바닥에 쏟아가며 놀기도 했다. 똑같은 현상 앞에서도 내 마음가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를 챙기는 게 우선이라 여기다 보니 아이 식탁에는 고기반찬이랑 각종 채소가 올라가는데 내 식탁에는 찬밥이랑 초라한 반찬 몇 가지가 전부일 때가 많다. 그렇게 끼니라도 챙기면 다행인데 가끔은 귀찮다는 이유로 점심을 건너뛰거나 간식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투닥거리며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때로는 진한 공허함이 밀려온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 때문에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고 소파에 누워 책 한 장 볼 여유가 없는가. 이제부터라도 육아와 집안일 때문에 저만치 밀려났던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싶다. 앞으로도 여전히 아이 챙기느라 아등바등하며 하루를 보내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악착같이 누려가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밤하늘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별똥별처럼 아주 잠깐의 여유라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챙기지 않으면 나는 곧 없어져 버릴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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