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
내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이유
나의 엄마는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살고 계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오셔서 육아를 도와주고 계신다. 그 덕에 나는 벅찬 육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운동도 하고 카페에서 책도 읽으면서 숨 고를 시간을 갖는다. 오늘 아침 집에 들어서는 엄마의 얼굴이 평소보다도 더 환해 보였다. 엄마가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연세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정류장으로 오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 분보다 버스에 먼저 올라타서 얼른 버스비를 계산을 하셨단다. 막 친한 사이도 아니고 가끔씩 오며가며 얼굴 본 적이 있는 분인데, 왠지 모르게 그냥 버스비를 내 주고 싶었다는 거였다. 엄마가 그렇게 하고 나니, 아침부터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고 하셨다. 4천원으로 이런 행복을 어디에서 사겠냐며, 내가 쓴 돈은 고작 4천원이지만 4만원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낸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작은 나눔으로 큰 행복을 느끼는 엄마를 보며 그런 엄마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오래전부터 엄마는 참 따뜻한 분이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는 내게 매일 도시락을 꼭 두 개씩 싸 주셨다. 소풍 때도, 운동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때로는 귀찮고 힘드셨을 법도 한데 엄마는 늘 한결같이 도시락을 두 개 쥐어주시며 친구와 함께 먹으라 하셨다. 엄마의 고단함과 수고를 이제야 이해한다. 그 친구가 어느 날 도시로 전학을 가고 나서 오랜 뒤에 우리 집에 찾아온 것도, 힘들었던 어린 시절 손을 잡아주었던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엄마는 한 번도 '이럴 땐 이렇게 해' 명령조로 가르친 적이 없다. 단지 자신의 삶 속에서 그대로 보여주셨다. 장보는 엄마를 따라나선 어느 추운 겨울날, 시장에서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김치만두를 파는 아주머니가 힘들어 보이신다며 두 손 가득 만두를 사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나누며 사는 게 곧 행복'임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면서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 삶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 부모의 언행, 사고방식, 가치관, 심지어 손을 까딱까딱 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습관들까지 아이들은 그대로 빨아들이고 내면화해 나간다. 아이 앞에서 말투 하나 손짓 하나 조심하게 되는 이유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의 행동에서 부모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내가 엄마로서 보여준 모습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면 때로 무서워진다. 그리고 엄마의 책임에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닮아가며 자란 것처럼, 우리 아이가 보는 나의 모습이 '진짜 닮고 싶은 꽤 괜찮은 어른'이면 좋겠다. 나는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기를 바라는데, '책 좀 읽어라!'라고 명령하기보다는 엄마가 집에서 책을 펼치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자주 데리고 가서 아이가 책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 아이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나는 아이에게 어떤 약속을 했을 때 그게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꼭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일만 먹겠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밥 먹고 나서 복숭아 줄거야.' 라고 약속을 했다면, 식사 후에 아기 식탁 위에 복숭아를 올려놓는 것이다. 약속을 잘 지키는 어른을 보고 자란 아이만이 자신과의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를 보며 세상을 이해하고 자아를 형성해 나간다. 아이에게 원하는 모습을 엄마가 삶 속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내가 우리 엄마에게 배운 최고의 육아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