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와 산책할 겸 집 앞 공원에 갔다. 주말 오후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친구들과 노는 어린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개중에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앞뒤 살피지 않고 신 나게 타는 광경이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였다. 그 때, 자전거 타고 가던 아이와 걸어가던 한 아이가 서로 부딪쳤다. 부딪친 아이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고, 자전거에서 내린 아이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내가 의아했던 것은 양쪽 부모의 반응이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자전거 탄 아이의 엄마는 적극적으로 상황 파악을 하려고는 하지 않고 멀리서 "왜 그러니?" 묻는 게 다였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어른들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전거에 부딪친 아이의 엄마 역시 아이를 보며 "괜찮아." 이렇게 말하고는 아이의 무릎을 털어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가서 친구들과 놀라고 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궁금해졌다. 아이는 정말 괜찮은 걸까? 왜 아무도 아이의 감정이 어떤지는 물어봐주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물음들이 생겨났다. 자전거에 부딪친 아이는 많이 놀랐을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 보였지만, 생각지 않게 어딘가에 쾅 부딪치는 경험은 어른들에게도 놀라고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괜찮아'라는 말로 단정짓기보다 아이에게 아이의 심리 상태와 감정을 먼저 헤아려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자전거에 부딪쳐 마구 울고 있는 아이에게 "괜찮아? 엄청 놀랐겠다. 많이 아프진 않았어?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이런 말들로 아이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감정을 읽어주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괜찮아. 그러면서 크는 거지. 뭐 이런 걸 가지고 울어.' 라며 상황을 재빨리 종결시키려고 하거나 무관심한 듯한 부모의 행동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하거나 심지어는 그 감정들이 하찮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 것이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부모로부터 감정을 읽어주는 말을 듣고 충분히 공감받은 아이는 어떨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부모에게 나의 마음을 존중받았다는 기분이 들어 자존감 및 부모를 향한 신뢰가 향상될 것이다. 이 아이는 다음에 만나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자전거를 타고 있던 아이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모가 아이가 괜찮은지 먼저 물어봐주고 어떤 상황에서 부딪치게 되었는지 아이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고, 부딪친 아이와 서로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누구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므로 앞으로 둘다 조심해서 잘 지내자고 다독이며 아이들이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부모가 옆에서 도와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기 이해 능력과 공감능력은 교과서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매일 맞닥뜨리는 크고작은 일들 속에서 더 잘 배울 수 있을 테니까.
육아를 하며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특히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나 은연중에 나와 남편이 아이에게 하는 말들을 보면 존중과 꽤 거리가 먼 경우가 종종 있다. '울지 마'라든지 '이거 무서운 거 아니야. 괜찮아.' 등등. 아이는 속상하고 힘들어서 우는 건데 우는 아이를 달랜답시고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이에게 과연 어떤 위로가 될까. "채훈이가 뚜껑을 열고 싶었는데 잘 안 돼서 속상했어?"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면, 서럽게 울다가도 눈물을 금세 그치는 때가 많다. 말 한마디의 힘이 이렇게 크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일, 이것만 제대로 잘할 수 있어도 육아가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