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유미 Sep 11. 2020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야

아이 행동의 책임을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기

   아이가 태어난 지 660일이 지났다. 아직 말을 잘 못할 뿐,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의 대부분은 알아듣고 반응하는 걸 볼 때마다 아이가 제법 컸다는 걸 실감한다. 길고 긴 육아의 터널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이 가기는 가는구나. 태어나서부터 두 돌에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의 먹는 문제'였다.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곧 나를 이루는 것이니 아이가 먹는 것들은 하나하나 신경 쓰려고 노력해왔다. 신생아 때는 미련스러울 만큼 모유에 집착했다. 분유를 먹으면 아이가 통잠을 잔다는데, 분유를 먹어야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다는데,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밤잠을 설쳐가며 악착같이 젖을 물렸다. 모유를 먹이는 사이사이에도 한 방울이라도 더 짜내야지 하는 심정으로 틈틈이 유축을 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엄마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라며 스스로를 치켜세웠으나 내 주변의 사람들은 진짜 독한 년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모유가 아이를 위한 완전식품이라는데 나 하나쯤 망가지는 게 대수겠어. 젖몸살쯤이야. 잠 좀 못 자면 어때.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이의 세포를 만들고 몸속에 저장된다고 생각하니 절대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난 어렵고 고된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게 최선의 엄마의 모습이었으니까.


   모유 수유 횟수가 줄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추가되었다. 모유 수유기에는 모유량이 적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고충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과 더불어 이유식을 안 먹는 아기와의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사태가 매일 벌어지는 것이다. 만들어서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매일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완벽한 엄마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식 책을 열심히 따라 하며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도대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나조차도 신기할 따름이다. 안 먹는 아이를 볼 때 느끼는 그 불편한 감정은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넘어와서도 여전히 아이는 밥에 관심이 없었다.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반찬만 조금 집어먹고, 밥에는 전혀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재료를 바꿔가며 주먹밥, 볶음밥을 해 줘도 보란 듯이 반찬만 쏙 골라먹는 아이 앞에서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여러 가지의 반찬으로 화려한 밥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요리책 보고 따라 해 보며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는데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해야 한단 말인가. 안 먹는 걸 억지로 입에 쳐 넣을 수도 없는 것이고. 반찬 만드는 것도 육아 퇴근 후에 내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서 만드는 일인데 버리는 게 더 많으니 허무하고 또 허무하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 것에 나는 한동안 화살을 나에게 돌렸었다. 내 음식이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걸까? 아이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부족한 엄마라는 스스로의 평가가 자존감을 자꾸만 끌어내렸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다. 입으로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한다고 하면서 왜 아이의 식습관 문제를 자꾸 엄마의 책임이라고 여겨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 먹도록 두고, 혹여라도 적게 먹어 배가 고프면 그것은 아이의 문제이지 내가 발을 동동거리며 조바심 낼 사항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아이가 배가 고프면 다음 끼니는 좀 더 잘 먹게 되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박정경 작가의 그림책《엄마는 너를 위해》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 잘못이 아니란다. 네 잘못도 아니야. 엄마는 더 행복해질 거야, 너와 함께.'라는 문장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엄마들은 타고난 모성애로 아이의 모든 문제를 엄마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닌 경우도 많다. 엄마로서 드는 걱정과 고민이야 당연하겠지만, 아이가 가진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항상 자책감에 무겁게 가라앉아버릴 필요까지는 없는 것 아닐까.


   매일 세 끼, 식탁 앞에서 나는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조마조마하며 아이의 표정을 살핀다. 오늘 점심 상차림은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냠냠 쩝쩝 맛있게 먹어주면 고맙겠지만 야속하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는 때가 많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식판을(힘이 얼마나 센지 흡착 식판을 잘도 뗀다) 들어 나에게 건네주는 저 단호한 표정을 보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이 일상을 나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다독여준다면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푹푹 퍼먹는 아이의 모습을, '엄마 밥 더 주세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날도 오겠지. 미래의 언젠가는.

매거진의 이전글 산 = 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