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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마스터 피스

by 일상여행자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 미술관에 다녀왔다.


이응노의 조각 그리고 판화, 콜라주와 추상화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보다 익숙한 군상(people) 연작 등 소장품 약 1400여 점 중 대표작을 선보이는 전시. 12월 18일까지다.


고암은 우리 미술을 새로운 표현으로 국제화시키는데 전 생애를 걸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자세로 창작에 임했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즐겨하던 일이 미술이었다. 누구도 이 일에 참견할 수 없었으며, 자신도 여기에 장애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깨끗이 단념하였고, 초지일관 60고개를 넘어선 지금에도 어떤 권태와 싫증을 느껴보지 못한 채 그저 충실히 종사하고 있다.” (<고암 이응노, 삶과 예술>, 고암미술연구소 엮음, 얼과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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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은 동백림 사건으로 2년 6개월 동안 감옥에 있는 동안 옥중화 300여 점을 제작했다.


"옥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림쟁이인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간장을 잉크 대신하여 화장지에 데생을 시작했지요.

또 밥알을 매일 조금씩 아꼈다가 헌 신문지에 개어서 조각품도 만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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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던 중 점심으로 받은 나무 도시락을 해체하여 만든 부조작품, 밥찌꺼기를 이겨서 만든 입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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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품이라도 어느 시기에 더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오늘 이번 전시에서 내겐 ‘서예적 추상’이 그러했다. 동양의 먹과 붓, 한지 위에서의 즉흥적인 붓놀림, 예술적 자유 의지와 사유가 상형적 기호로 표현되어 있다.


먹물을 만드는 작업은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우선 나무판자 위에 붓, 먹, 깨끗한 물을 준비한다.

먹과 물을 섞었지만 아직 원활한 먹의 농도를 얻지 못했다.

이응노는 자신의 모국인 한국에서 수천 장의 종이를 가져왔고

정성스레 선별된 종이 위에 작업을 했다.

떨림이 있는 화필

이러한 정교함과 충동성의 만남에 대해 폴 발레리(Paul Valery)는 이렇게 말했다.

르 므완 갤러리, 1974 <서예전> 영상, Callibraphie Chinoises Video 중에서


1980년대를 전후해서 그린 <군상> 작품들, 화면 가득히 수십, 수백 그 이상의 사람들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암은 말했다. “그림은 벽에 걸어두는 장식품이 아니다. 그림의 생명은 핏기 용솟음치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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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밖으로 나와서도 그의 말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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