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예술의 조화, 몸과 정신의 이분화가 아닌 통합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예(工藝)의 매력은 상태보다 과정에서 온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쓰임’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96)는 예술을 진지한 것, 오브제적인 것이 아닌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바우하우스의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건축가, 조각가, 화가, 우리 모두는 수공예로 돌아가야 한다.(…) 예술가와 수공예인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예술가는 고귀한 수공예인인 것이다. 드물게 영감이 깃드는 순간, 의지의 통제를 넘어서는 그 순간, 하늘의 은총에 힘입어 예술가의 작업은 예술로 꽃피게 된다.”라고 말했다.
추앙받는 예술도 좋지만 쓰임의 예술을 나는 사랑한다. 만드는 사람의 손의 정신과 매일매일 내 삶 속에서 즐겁게 사용하는 손의 경험이 만나는 쓰임의 예술은 일상 미학을 창조해 낸다.
오랜 공예기반 에술가 모임인 수다(SU:DA) 기획전시에 다녀왔다(갤러리 혜윰에서 11월 24일까지, 좋은 전시였는데 이제야 알리게 되어 아쉬움) 빈번한 쓰임보다는 특별한 쓸모 즉, 예술 공예작품이 많다.
김영민의 <찬합>은 층층이 포갤 수 있는 나무 그릇을 한 벌로 하여 만든 음식 그릇으로 나들이할 때나, 소풍 갈 때 가지고 다니기에 멋스럽다. 소나무를 이용해 만들었다.
김영민 찬합 125*125*250
박유진의 <Bird P, Brooch>는 평소에는 브로치로도 사용할 수 있는 새 모양 브로치를 나뭇가지에 배치해 생기에 찬 작은 숲 속의 소리,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다.
“공예적 작업은 쓰임을 생각해야 돼서 바느질선을 반듯하게 맞추는 거나 정해진 작업방식을 따라야 함이 있는데 이번 새 작업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 우연적으로, 순간적으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바느질했어요”라고 말했다. 작가의 예술적 발상 그리고 검은색과 흰색 단색 사진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표현법은 마치 무언가를 재현하고자 하는 재현성에서 벗어나 오직 순수한 형상 그 자체로 회귀하려 했던 말레비치의 의지를 오마주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박유진 Bird P, Brooch 370*370 가변설치
박유진 <Bird P, Brooch> 370*370 가변설치
나무 테이블 인듯한 한우석의 <일억 년>은 나무를 운송할 때 부서짐을 방지하기 위해 감싸는 용도 후 버려지는 나무들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예술에 있어 ‘쓸모없음의 쓰임’,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말이 있다. 이 역설적 의미의 한자성어는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로부터 유래되었다. 얼핏 무용해 보이는 그 어떤 대상, 행위에 에 내재된 유용함, 가치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함에 대한 것으로 이러한 예술 공예적 조형언어는 삶의 미학에 내적 생명력을 부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우석 <일억 년> 1200*1200*350
신성창 작가는 이태원 참사 이후 전시에 내려고 작업하던 작품을 대폭 수정했다고 한다. 작품은 작가의 시간, 내적 필연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둥근 접시 모양의 차가운 물성의 금속 매쉬 위에 떨어진 꽃잎들이 담겨 있다. 이치헌 작가의 평화로움이 깃든 자연풍경과도 같은 도예 작품, 김신정 작가의 <방랑 물고기>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