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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시간,생명의 빛 <검은 비>

by 일상여행자

8.5m(가로)*2.5m(세로) 검은색 단색 회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지난 2,000년부터 작가가 100kg이 넘는 쌀에 유화물감을 섞어 만든 검은 쌀의 질감이 슬프게 그러나 빛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2014년 여름 독일에서 3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낸 정영창 작가는 당시 독일에서 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 초대 작가로서 광주에 와 있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오월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보며 현시대에서 바라본 새로운 5월 작품들을 구상하던 어느 날 도청 맞은편에 있는 상무관을 찾았다. 내가 마주한 상무관은 종각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채 잘 숨겨진, 그러나 전혀 화려하지 않은 커다란 상여처럼 보였다. (중략) 상무관은 즉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무엇 때문에 시민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저를 방치하는 거죠? 혹시 저를 잊으셨나요?(상무관은 5.18 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전으로 ’<검은비(black memorial)>작품이 전시되기 전까지 문이 닫혀 있었음) (중략) 상무관만큼 오월을 아름답게 승화할 수 있는 곳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아픔과 슬픔과 원한으로 가득하지만 충분히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추모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음습하고 무섭고 무거운 기운으로 꽉 찬 이 죽음의 공간을 무엇으로 편안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치유와 사유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큰 숙제였다.(중략) 그때 번개처럼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래전부터 제작하고 있던 <검은 쌀> 작업이었다. 쌀 한 톨은 작은 우주이며 생명과 죽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검은 쌀’로 덮여있는 검은 표면은 모든 빛을 품고 있어 슬픔과 상처를 조용하고 따듯하게 안아주고 모두의 빛이 되는 작품인 것이다. (중략) 우여곡절 끝에 ‘쌀’ 작품은 5.18 38주년 기념행사 공식 초청으로 뒤셀도르프 작업실에서 컨테이너에 실려 함부르크와 부산을 거쳐 광주 상무관에 도착하였다. (정영창 작가, <나는 왜 검은 비를 세웠나?> 글 중에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정영창 작가는 상무관에 전시돼 있는 작품 <검은 비>를 헌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때 광주에 헌정한 작가의 작품 <검은 비>의 존치 여부가 논란 중입니다. 지난달 10월 11일 도청 추진위 사무실에서 열린 <검은 비> 작품에 대한 철거 논쟁에 참여했던 H작가는 말했습니다. “작가의 양심을 걸고 말하지만 더 이상 상무관의 정신과 역사에 부합하는 이러한 작품은 쉽게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슴 한편이 아직도 쓸쓸하다”

이후 2차례의 예술가와 시민모임이 있었고 중재안(작품을 존치, 작품을 벽면으로 이동하여 공사에 지장이 없도록 한다)이 보내졌습니다. 11월 26일(토)에는 상무관 앞에서 존치를 위한 성명서 발표(퍼포먼스)가 있었지만 아직 관계기관에서는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

예술가의 역할은 미적 대상으로서의 예술 범위에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창의력은 직면한 사회문제를 읽어내고, 변동을 예측하는데 탁월합니다. 이러한 사회-예술가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오랜 특성 중 하나입니다. 이는 예술이 ‘공공재’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작가는 지난 2,000년부터 작품이 완성된 2018년까지 18여 년 동안 <검은 비>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거대한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뿐인가 작품이 상무관에 설치된 지난 2018년 이후 <검은 비> 작품 앞에서 여러 예술가는 다양한 예술 행위를 하였고, 외부에서의 방문, 수많은 시민들은 헌화하며 위로하고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위와 같은 거대한 시간의 ‘과정’들을 지워버리지 않을 ‘가능성’을 모색해야 합니다. <검은 비> 앞에서 누구나 언제나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역사보존, 복원은 의도된 ‘단절된 과거’만을 전승하는 것이 아닌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가 말했듯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현재 세대와 과거의 대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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