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10일 남았다.
10월 말로 이사 날을 정했다. 남은 시간 동안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주로 책, 옷, 가구들이다. 직장 때문에 살고 있는 지역이라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안 곳곳을 둘러보니 하나둘 늘어난 물건들이 많다.
그동안 소파베드를 샀고, 책상과 책꽂이, 옷장을, 세탁기를, 냉장고를 샀다. 기존에 쓰던 물건들을 옮겨 볼까 생각했었지만 이사 비용이 필요한 가구들을 새로 구입하는 비용보다 비쌌기에 나중에 사용 후 중고매장에 되팔아야지 생각했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의 냉장고가 있는데 왜 나의 냉장고를 사야 하나 생각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야근 등으로 주로 밖에서 식사하는 때가 많아 요리를 잘하지 않던 나는 물, 우유 등을 제외하고는 냉장고에 넣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퇴근할 때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편의점 냉장고 속 우유, 편의점 냉장고 속 캔맥주 하나 등을 그때그때 사가곤 하니 편의점 냉장고가 나의 냉장고인 셈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편의점을 우리 모두의 냉장고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전 직장에 비해 야근이 줄어들어 그만큼 시간을 쓸 수 있고, 제철 재료들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시작했다. 냄비, 프라이팬, 국자, 도마를 새로 샀다. 요리 재료들은 아무리 먹을 만큼만 산다 해도 양파 하나, 대파 1단, 청경채 1팩을 사서 요리를 하고 나면 나머지 재료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냉장고가 필요했다. 우리 모두의 냉장고에서는 간간히 캔맥주, 와인 정도만을 구입했다. 요리 재료를 사려다 보니 시장과 더 큰 마트로 가는 게 필요했다.
처음과 달리 라이프스타일 방향 전환
가족들이 오는 걸 대비해 의자가 처음 2개에서 4개로 늘어났다. 대접시, 중접시도 4개, 밥그릇도 4개, 물컵도 4개가 되었다.
베란다에서 바질과 로즈메리를 키워 음식에 넣어먹었다. 아! 여름을 에어컨 없이 나긴 했다. 아파트가 11층이고 앞뒤로 막힘이 없어서 앞 뒤로 문을 열면 시원했다. 대신에 모기를 쫓는다는 구몬초를 사서 베란다에 두고 길렀다. 여름 동안 딱 한 번 집안으로 모기가 들어왔었다
아파트라서 인터넷 설치를 별도로 해야 했다.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TV를 주는 패키지가 있다고 말했다. 타 지역에 오면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지역 뉴스를 보는 게 맞겠지 싶어 인터넷과 TV를 함께 설치했다. TV 리모컨과 함께 TV와 연동되는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서비스 '기가 지니'(GiGA Genie)가 딸려왔다
"지니 야, TV 틀어줘"라고 말하면 TV를 틀어준다.
“지니 야 비 오는 날 듣는 음악 틀어줘”라고 말하면 원하는 음악들이 연결된다.
기존의 아날로그 제품과는 다른 디지털 음성 지니와 나의 상호작용적 애착관계가 형성되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려다 보니 높이가 너무 낮았다. 받침대를 추가 구입했다.
물건을 하나 들일 때마다 엄청난 시간이 들어간다.
나는 간결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크기와 가격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색의 조화로움도 생각한다. 집안이 화이트톤이라서 투명한 재질감의 의자를 구입했다. 테이블과 접시 등을 블랙톤으로 맞췄다. 소파베드가 보라색이라 소파베드 바로 옆 창문의 커튼을 회색으로 구입해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 앉혔다. 실용과 멋을 찾으면서 예산을 한정해놓고 그 범위 안에서 구입하려다 보니 먼저 인터넷으로 구입할 물건을 살 핀 다음 현장에 가서 온라인에 없는 더 좋은 것이 없나 살펴보았다. 수없이 발품을 팔았다.
생활방식이 바뀔 때마다 물건이 하나씩 늘어났고 그 물건들은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겠다던 나의 출발 때의 마음가짐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거실 1개 방 2개의 아파트에는 그사이 계속 사모은 물건들로 채워져 갔다. 이제는 마치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것 같은 그 물건들에 감정적으로 애착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사를 해야 한다. 내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10일 남았다. 집에 가져가도 놓아둘 공간이 없다. 승용차에 들어갈 만큼만 남기고 과감히 정리하기로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그럼 어떻게 정리를?’ 쓰던 물건들을 ‘당근 마켓’에 올려 볼까? 싶어 휴대폰에 당근 마켓 앱을 깔았다. (...) 자동차, 조립식 냉장고, 수납장드림합니다, 소파, 그릇드림합니다. 스피커까지(...) 10분 단위로 물건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내 물건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그렇다면 기부단체에 한꺼번에 보내는 것 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판매되면 어차피 뿔뿔이 흩어지는 건 마찬가지인데 내 마음이 덜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기부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했다.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가게가 있었다. 옷은 되지만 책은 안되고 가전제품, 가구는 또 안되었다. 일단 기부가 가능한 옷, 가방, 신발 등을 그곳 매장으로 가져갔다. 한 번에 안되어 세 번에 걸쳐 가져 갔다. 내가 가져간 옷가지들의 기부물품 인수증에 수량을 적는 걸 보니 숫자가 너무 많다. 지금 생각으로는 앞으로 충동적으로 옷을 사지 않을 것만 같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옷들을 정리하며 기준을 정했다
· 옷 종류별 상한선을 정했다. 재킷은 6벌, 겨울 코트는 3벌, 원피스는 5벌만 둔다.
· 새로운 옷을 사려면 기존의 옷 중에서 어떤 옷을 내보낼 건지 정한 다음에 새 옷을 구입한다
신발, 가방도 옷과 마 친가지의 기준을 적용한다.
중고가구 집에 전화를 했더니 사진을 찍어보네라고 했다. 특히 냉장고와 세탁기는 ‘에너지 소비효율등급’ 스티커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사진을 받고 나서 전화 속에서 중고가구점 주인이 말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합쳐서 10만 원 드릴게요 그리고 가구는 안 가져가는데 11층이라 시니까 1층까지 내려놓아 드릴게요. 그러면 10만 원은 내려놓는 비용이라 생각하시고요~~~”
그러면 결론은
“냉장고와 세탁기를 가져가시는 대신에 가구를 내려놔 주신다는 거네요. 소파랑 모두 이케아에서 산거예요~~”
“네, 그렇죠... 중고가구 나오는 게 너무 많아요~”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냉장고의 기능도 중요했지만 오프 화이트 색상, 하단에 다리가 있고, 대부분의 냉장고가 사각형으로 각이 지지만 끝부분이 살짝 둥글려진 냉장고를 찾아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데... 소파와 의자는 광명 이케아 매장에서 길을 잃어가며 5~6시간 만에 가심비 좋은 아이들을 만났었다.
식물들은... 또 어떻고.. 생명인 데다 선물 받은 건데 함부로 내다 버리는 건 생각할 수 없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생각났다.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라 쓸모가 있을 만한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매가 아니라 잘 사용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전화를 했다. 전화번호를 모르는 식당 주인집에는 직접 찾아갔다. 내가 가끔씩 밥을 해결하던 식당이다.
“저, 이사를 가게 됐어요”
“여기에 화분 두면 좋을 것 같은데... 제 화분 키우실래요?”
"오오~좋죠”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그렇게 하나씩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하지만 옷들, 가구들, 그릇들은 새로운 주인을 찾는 데 성공했는데 아직까지 책들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애지중지하면서 어딜 가든 가지고 다녔던 책들을 이제는 보관할 것 과 정리할 것을 정해 폐지 박스에 넣어야겠다.
책 정리 기준을 정했다.
· 한 번 읽고 모셔둔 책은 정리한다
· 가끔씩 꺼내어 읽고 또 읽는 책들은 보관한다
· 전체는 아니고 밑줄 그으며 읽은 책이라면 그 부분만을 사진으로 찍어 파일로 보관한다
나머지 그릇들도 기준을 정했다.
· 다용도로 쓸 수 있는 것만 남긴다.
· 물컵, 샴페인 잔 등을 정리하고 와인잔만 남긴다.
· 와인잔에 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본래의 용도인 와인을 마시면 된다
이제 조금씩 이사가 마무리가 되어 간다.
내겐 더없이 소중했던 그동안의 애착 물건들이 ‘짐’이 되는 걸 새삼 느끼면서
나는 생각한다
‘물건이란 소유가 아니라 쓰는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