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현장의 하나인 미술관이 변화되고 있다. 동사무소, 학교, 목욕탕, 여인숙 등 그동안의 사연, 시간을 간직한 채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미술관이란 이름이 붙게 되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공간’으로 지속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왜 일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미술관’ 다움, ‘예술’ 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에의 경외심(?) 때문 아닐까.
우리는 근현대의 시간을 거치면서 무의식적으로 미술관의 ‘안’과 ‘밖’에 대한 구분 짓기를 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남성용 소변기를 예술적 공간에 들여놓았을 때 소변기는 ‘작품’ <샘>이 되었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이 기존의 실용을 버리고 '그때, 그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일어난 장소에서의 '일회적 현존'으로 새로운 예술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초기의 예술작품이라 말하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생각해보자.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였다. 사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사냥을 잘하기 위한 주술적 제의적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껏 예술에 대해 과거에 자연스레 생각 되어졌던 ‘삶을 위한 예술’ 즉 예술의 ‘사용 가치’ 보다 예술을 ‘예술을 위한 예술’로의 접근에 무의 지적으로 스며 있다.
오랜만에 류미숙 작가를 만나러 양림 미술관에 갔다. ‘엄마의 밥상’ 전시를 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양림 미술관은 이전에 조근호 작가 전시에 들렸던 이후 두 번째 방문. 미술관다운 외관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당초 근대 의학박물관을 열기 위해 전통 한옥과 서양식 가옥 형태가 뒤섞인 건물을 완공했으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미술관 임시 운영을 시작한 것이 양림미술관의 탄생 배경(기독신문, 2013.810)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바로 옆 유진벨 선교 기념관과 외관이 비슷해 미술관이란 현판이 붙어 있긴 하지만 ‘미술관스럽지 않은 외관’ 덕분에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문턱이 낮은 효과가 있어 보인다.
아주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관람객(이 또한 강박이다. 미술관에 가려면 차려입어야 한다는?)이 작품 앞에서 연신 엄지 척을 했다.
예술이란 우리를 성찰하게 하며, 어떤 생각을 자아내기도 하고, 또 다른 생각에 빠져 들게도 한다, 나아가 이리저리 생각을 옮겨 전혀 새로운 기묘함을 얻기도 한다.(중국 육조시대 동진(東晋)]의 인물화가 고개지(顧愷之)는 중국 미술의 기틀을 닦아 놓은 위대한 화가이며 회화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화론을 대표하는 명제는 이형 사신(以形寫神), 전신 사조(傳神寫照), 천상 묘득(遷想妙得)인바, 그 가운데 천상 묘득은 생각을 옮겨 묘함을 얻는 것으로 미적 대상의 오묘함을 취하기 위해 묘사 대상의 외형을 변형함을 뜻한다)(<다시 생각해보는 예술, 김광명 15쪽) 나는 이 생각을 빌어 예술을 정의하곤 한다.
류미숙 작가는 지난 2019년 이후부터 더욱 지속적으로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 무렵 나는 광주 mbc TV <뉴스투데이> 프로그램 ‘이슈 인 문화’ 코너에 출연 중이었고 류미숙 작가 전시 소식을 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알게 되었다. 이후 2년여 만의 만남이다.
오랫동안 식당일을 하시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엄마가 쓰시던 그릇들을 작품의 오브제와 주제로 녹여내는 작업
나는 “그 시그니처 작품이 이번엔 없네요?”라고 물었다.
대신에 그림 속 손들이 예쁘다.
“식당일을 하시느라 휘어지고 거칠었던 엄마의 손을 그림 속에서나마 예쁘게 해 드렸다”는 것이다.
누구나의 밥상에 있음 직한 김이지만 그림 속 김은 먹기 좋을 만큼 손으로 잘라 밥에 얹어 주던 엄마, 보온밥솥이 없던 시절 아랫목에 밥을 넣어두었다가 밥을 먹을 때쯤 두 손으로 감싸 남은 온기를 채우던 엄마의 따듯한 손이 있다.
작가는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그릇들을 사용하려면 힘이 많이 들어요. 그릇들을 캔버스에이어 붙이고 하는 작업(...) 그동안 몸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그 작업을 잇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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