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권진규(權鎭圭, 1922~1973)의 작품을 좋아한다. 흙의 물성을 간직한 테라코타(Terracotta, 이탈리아어로 구운 흙)와 건칠(乾漆) 등 전통에 바탕을 둔 조각 세계를 일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면 ‘뭉클함’과 ‘먹먹함’이 앞선다. <기사>, <지원의 얼굴>, <자소상>,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볼 때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마감한 작가의 소멸이 내게 아직까지 더 크게 남아서일 것이다.
권진규는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2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무사시노 (武蔵野) 미술대학에서 프랑스의 조각가 부르델(E. A. Bourdelle, 1861-1929)의 제자였던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 Takashi Shimizu, 1897~1981)로부터 미학과 조각을 배웠다, 이후 일본 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음은 물론 2009년 무사시노 미술대학(우리나라 이중섭, 장욱진 화가 등이 무사시노 출신)에서는 개교 80주년을 맞아 예술분야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동문을 선정하였는데 권진규 작가가 뽑히기도 했다. 일본의 명문대학에서 한국인이 가장 뛰어난 작가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 일이었다.
이제는 이 분야 한국의 대표적인의 조소 예술가로 미술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음은 물론이다. 시대적 안목과 어울리지 않았으리라. 눈여겨보는 사람,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어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더 이상 작품을 이어갈 의욕을 갖지 못했다.
1973. 5월 4일 작가는 그의 분신과 같은 작품만을 남긴 채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수학이나 조각이나 이런 분야에서는 어떤 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 단계에서 그 단계를 도약을 해야 되는데 힘이 약하면 그 계단을 뛰어넘을 수가 없죠. 근데 그동안 여러 단계에 걸쳐서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올라가는데 성공을 하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너무 지치셨다. 그 물질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 어렵고 (...) 아무리 초연한다지만 주변의 인정이 있어야는데 (...) 그러니 ‘이제는 접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셨을 거라고 봅니다(<나의 외삼촌 권진규, 허경회 인터뷰 내용 중, 2017.7)
서울시립미술관(2022,3,24-5.22)에 이어 광주시립미술관(2022.8.2.-10.23, 본관 제1~2 전시실 )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영원을 빚은 권진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생애 전반에 걸쳐 제작한 작품 120점 그리고 드로잉, 작업에 대한 구상, 관련 자료 등 아카이브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제는 ‘뭉클함’과 ‘먹먹함’ 보다는 예술작품으로 다시 권진규 작가를 만나리라 생각하며 광주시립미술관에 갔다. 1947-1958 구조의 본질에 대한 탐색, 1959-1968 이상과 영원의 구현, 1969-1973 구조를 넘어선 내면의 형상화로 나뉘어 있다.
귀를 모으고, 세상을 응시한다. 영원을 갈망하듯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곧게 뻗은 손, 손바닥을 힘껏 펼치고 있다. 머플러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세상의 소리보다는 영혼의 소리를 듣고자 함일까? 작가는 작업 속에 항상 자신 주변의 인물, 보통 제자라던지, 잘 아는 지인을 선택했다.
작가는 유준상과 미학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눴는데, 유준상은 “예술은 간접적이라고는 하나, 인간 경험의 반영으로 모딜리아니의 초상은 그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라는 만남의 미학을 언급하며 권진규에게 모델을 소개한다. 또한 강의를 나갔던 홍대에서 만난 장지원, 최경자 등을 모델로 <지원의 얼굴>, <경자> 등을 제작한다. 바로 다음 해 7월 일본 니혼바시(日本橋畫廊) 화랑에서 총 30점의 작품으로 <권진규 조각전(테라코타)>를 개최한다. <지원> 등이 동경 국립 근대미술관에서 영구 구입하여 소장한다. <도쿄신문>, <요미우리신문>에 작품에 대한 상세한 비평이 소개되는 등 상단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전시, 작가 연보 중에서)
권진규는 아뜰리에에서 그리스도 형상을 만들면서 절대자인 하나님을 만났을까? 건칠기 법으로 만든 <십자가 위 그리스도> 작품은 어느 교회의 요청으로 제작하였으나 교회 측의 거절로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유는 늘 익숙한 기존의 거룩함이 느껴지는 예수 그리스도상이라기보다 내면을 반영한 예술가의 조각 작품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담담한 표정, 유난히 긴 팔은 마치 날개와 같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비상할 듯하다.
#권진규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탄생 100년 #만남 #미학 #테라코타 #건칠 #독자적 예술세계 #조각 #촉각의 세계 #가장 근원적인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