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길 옆 조형작품 하단에 크기가 축소된 ‘尙武臺’(상무대) 라 쓰인 표석이 보였다. 큰길 건너편에는 관련된 ‘무언가 인 듯’ 느껴지는 게 있어 길을 건너 좀 더 가까이 가 보았다.
화강암 표석에는 과연
‘상무대 표석 이전기’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 표석은 1952년 1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께서 이곳에 개소된 육군 교육기관의 이름을 상무대(尙武臺)라고 명명하고 친히 글씨를 써 세운 것이다. 1995년 1월 상무대가 장성군으로 옮겨간 뒤 이 지역이 새도시로 개발됨에 따라 이 표석은 원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10m 옮겼다. 1997년 10월 9일 표석 이전 공사를 마치면서 구 상무대의 위치와 역사를 알려주는 이 표석이 길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1997년 10월 10일
광주광역시장 송언종
상무대 표석 이전 관련 내용이 적힌 화강암 표석(1997년 제작) 옆에는 쓰레기가 담긴 종량제 봉투만이 가득하다. “이렇게 방치를 해도 되는가?”
지금 상무지구(尙武地區)라 불리는 이곳은 1952년 육군 보병학교와 통신학교·포병학교 등이 차례로 옮겨오면서 ‘상무대(尙武臺)’란 이름이 생겼다.
당시 부대 입구에는 ‘상무대’란 한자가 새겨진 표석이 세워졌는데 이 표석의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상무대’가 대한민국 육군의 초급장교를 육성하는 교육·훈련시설 있는 곳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상무대는 광주시민에겐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상무대 안에 계엄군의 지휘소와 군 법정·감옥이 설치됐다. 신군부는 이곳에 시민 3000여 명을 붙잡아와 고문과 구타를 했다.
1995년 상무대가 장성으로 옮겨 가면서 대규모 신도시 계획이 추진되었다. 상무대의 '상무'를 따서 상무지구(尙武地區)로 명명했고, 도시 개발공사와 대한 주택공사가 개발을 맡아 1995년 1월 착공, 1997년 5월 최초 입주, 2003년에 개발이 완료되었다. 이로써 상무지구는 1990년대 이후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상무1동, 유촌동 일대에 조성된 대규모 계획도시가 되었다. 광주광역시 청과 시의회가 2004년 3월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광주의 신도심 시대를 열었다.
인터넷 상으로 상무대 표석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상무대 표석이 5.18 자유공원으로 이전됐다고 나와 있었다.
몇몇 글들을 요약해보면
상무지구 택지개발 사업에 따라 옛 상무대 정문 인근이었던 상무대로와 시청로가 만나는 곳의 중앙분리대에 당시 쓰였던 상무대 표석이 있었는데 2020년 7월에 한 운전자가 비석 기단부를 들이받은 사고가 일어난 뒤 ‘교통사고 위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2021년 12월 5.18 자유공원으로 이전됐다 는 내용 등이다.
현재의 광주광역시청 앞에 위치한 평화공원은 시청을 중심으로 쭉 길게 펼쳐져 있는 도심 속 생태 숲(2007~2009년 조성)이다. 시청을 중심으로 공원의 끝 지점에는 무등산의 입석대를 형상화한 폭포가 있는 공원으로 1997년 상무지구 택지개발 당시 조성된 공원으로 상무지구 택지개발의 시간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https://www.minjok.or.kr/archives/115622 / 2020년 6월 23일)는 상무대라는 이름의 유래를 이렇게 전한다.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는 이른바 ‘황군(皇軍)’의 근간을 이루는 육군 장교를 배출하는 기관이니만큼 해마다 졸업식에는 일본 천황이 직접 임석하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특히, 1937년에는 육군사관학교 본과(本科)를 도쿄 신주쿠(東京 新宿)의 이치가야 혼무라 쵸(市ケ谷本村町)에서 가나가와현 코자 군 자마 촌(神奈川縣 高座郡 座間村)으로 신축 이전하였는데, 이때의 졸업식은 이러한 소재지 변경 이후에 최초로 거행되는 행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 천황이 새로운 육군사관학교 소재지에 대해 하사한 명칭이 ‘상무대’였다. 이 이름은 이곳이 역사적으로 사가 미노 쿠니(相模國)의 옛터에 속하고 바로 이러한 유서 깊은 곳에서 무(武)를 연마한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으로 알려진다. 옛 사관학교 자리가 언덕 위의 평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탓에 통칭 ‘이치가야 다이(市ケ谷台)’라고 부른 전례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지형과는 무관하게 벌판에 자리한 군사학교 소재지 전체에 대해, 그것도 천황의 명명에 의해 ‘무슨 무슨데’라는 명칭이 하사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일제가 사용했던 이러한 명명법은 해방 이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차용되었다. 1952년 1월 6일 광주에 개설된 육군 종합학교에 대해서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상무대(尙武臺)’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1952년 1월 9일 자 경향신문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상무대(尙武臺)’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는 소식이 수록되었다.
상무지역이 육군 초급장교 교육 및 훈련기관으로 사용된 이전인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육군과 해군과 직결된 역사가 있다. 일본 육군은 1929년에 '광주군 극락면 치평리(현 서구 치평동)'에 임시 활주로를 개설했다. 1938년에는 임시 활주로를 민간 비행장으로 바꾸어 개장했다. 그리고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해군이 군 공항으로 징발하여 사용했다. (https://namu.wiki/광주공항)
1995년부터 광주 상무 택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상무지구가 만들어진다. 상무지구의 총 개발면적은 3.18㎢로, 여의도보다 약간 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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