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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Mar 09. 2022

로봇 카페가 생겼다

무인점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무인 편의점을 시작하기  고민했던 업종 중에 무인 카페도 있었다. 고급 자판기를 가져다 놓고 별도의 안내사항을 적어두고 손님들에게 음료와 휴게를 즐길  있게 하여 매출을 올리는 방식이다. 동네마다 커피숍이 즐비하고 시내는 물론 에도 대형 카페들이 줄줄 생기는 마당에 누가 무인 카페를 찾을까, 기껏해야 테이크 아웃 커피가   나가겠지, 커피를 마실만한 유동인구가 적은 초등학교 앞이다 보니 커피보단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낫지 싶어서 이내 마음을 접었다.


 무인 편의점을 시작했을 때 같은 상가에 열네 개의 점포 중 고작 세 개만 가게가 들어와 있고 나머지는 텅텅 비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원들이 주루룩 입점했다. 떡집과 세탁소까지 입점하고 나서도 빈 상가가 있었는데 궁금해하는 찰나 인부들이 와서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댔다. 그리고 어느 날 간판이 달렸다. 이름하여, 로봇카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 세 개와 마카롱 자판기, 음료 이용을 위한 물건 일속이 비치된 셀프바, 그리고 위풍당당한 로봇 바리스타만 있을 뿐.



 무인 커피숍이라고 해서 자판기 수준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 로봇이 직접 커피를 눌러서 타고 완성되면 손님을 호출한다. 처음 계산을 할 때 받아 놓은 번호 네 자리를 입력해야 커피가 스르르 내려온다. 로봇은 몸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허리(?)의 반동으로 눕고 일어서고를 반복해 뚜껑도 없는 음료를 쏟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는다. 유리 안에 갇혀 있지만 어떠한 불필요한 노동 없이 깔끔하게 손님이 원하는 일을 척척 해낸다. 정말 신기했다.


 카페가 그렇게 많은데 무인카페를 누가 오겠느냔 말은 틀렸다. 코로나 때문에 오히려 카페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저렴한 값으로 간단히 마시고 떠날 수 있는 무인 카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학원이 많다 보니 아이들을 픽업하려고 왔다가 들러 한잔씩 마시며 시간을 보내거나 유아차를 밀고 나와 잠깐씩 머무르는 부모들도 자주 보았다. 먹어보니 맛도 좋았다. 자판기만 있는 것보다야 사람처럼 관절(?)을 쓰는 로봇이 있으니 눈요기도 되었다.


 나는 무인 편의점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무인 가게가 생기면 반갑고,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솟는다. 업종이 점점 다양해지는 걸 느끼며 이러다가 관리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점포에서 기계가 홀로 장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준비가 되었을까?


 로봇이 타 주는 커피 한잔 먹으려 들어간 점포에서 아무렇게나 사용하고 버리고 간 휴지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여기도 마찬가지구나. 갑자기 몇 달 전에 뭉텅이로 물티슈를 빼놓고 가버린 가게 손님이 생각나서 혀를 찼다. 적어도 내가 쓴 휴지들은 버리고 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흘린 음료는 닦고 떠나야 하는 게 아닐까. 셀프서비스라는 개념을 모르는 건 아닐텐데...


 셀프로 이용하는 곳임은 맞지만 무인 편의점이나 무인 카페나 누군가의 노동력으로 보존되고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청소부가 있다고 함부로 건물 바닥을 더럽혀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듯 무인점포 역시 '당연한 예절'이 필요하다.


 무인 카페에 대해서 말했더니 남편이 얼마 전에 인터넷 뉴스에서 본 기사를 들려준다.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무인 카페를 더럽혀 놓은 사건이 있었단다. 비단 청소년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다. 지금 당장 주인의 눈이 없다고 해서 함부로 시설을 이용해도 된다고 믿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무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주로 사람들은 '무인이 아니었다면'을 가정한다. 그것은 그저 사람됨에 관한 것이다.  '내돈내산인데 어때', '손님은 왕' 같은 말로 타인의 노동력을 폄하하는 이기적인 행태에 '무인이어서'를 이유로 들면 안 된다.


 앉아서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기에 커피를 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상품을 여유롭게 살펴보며 티타임을 즐기려던 나는 커피가 식을 때까지 그 잔을 만나보지 못했다. 당장 걸레통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포도맛이 나는 음료 내지는 아이스크림 자국이 선명한 더러운 바닥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가게에는 휴지와 물휴지가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 보라색 얼룩의 주인은 쏟은 후 그대로 나가버렸다. 이미 말라붙은 그 끈적한 자국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서서 미는 걸레로는 불가능하다.  쪼그려 앉아서 일일이 손걸레로 박박 닦아야 한다. 학창 시절에 오리걸음으로 기합 받던 생각난다. 물론,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응당 해야 하는 일임을 알지만 가끔 그런 테러를 만날 때마다 '대충이라도 닦고 가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게 더욱 씁쓸했다.


  포도색 얼룩을 닦고 돌아서니 카운터에 언제 꺼내놨는지 모를 아이스크림이 떡하니 있었다. 당연히 내용물은 모두 녹았다.(콘이 아니라 통에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이라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미지의 손님은 꺼내와서 사려고 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변심하였다. 그랬으면 가까운 냉동고에 넣어줬어야 했다. 빙과는 녹으면 다시 얼려서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인은 그 자리에서 값에 상응하는 물건을 잃고 만다. 손님의 부주의로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뜯어서 버리고 용기를 씻어서 분리수거하는 행동은 그다지 유쾌할리가 없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으면서 '그러게 누가 무인 가게를 하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람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다.


 주변에 업종을 불구하고 무인점포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알려주시길 부탁한다. 무인점포를 이용하게 되거든 유인 점포인 것처럼 예의 바르게 사용하라고. 갑자기 왜냐고 물을 수도 있고, 지금 당장은 안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이용하게 될 것이다. 말을 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모른 채로 자라날 공산이 있다. 한두 마디의 말만으로도 충분히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무인 가게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이나 대면이 불편하고 낯설어질수록 키오스크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사람이 없다고 사람이 아닌 것처럼 굴 이유는 없다. 무인점포에 사람이 없다고 마치 제 것인 듯 - 혹은 제 것이 아니어서- 함부로 구는 것은 결국 인격의 문제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햇빛이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듯이 사소한 일이 사람의 인격을 설명해 줄 것이다.
-S. 스마일즈



오늘도 로봇 카페와 무인 편의점의 안녕을 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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