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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Sep 15. 2021

엄마는 못 말려 (늙은 사마귀 편)

늦은 밤,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식구들이 자러 들어가고 소파 한편에 앉아서 책을 보는 시간은 충전이고 휴식이다. 거실에는 딸아이의 물건이 조금 널브러져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침에 치울지언정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날은 아이들이 자러 가기 전에 하도 늑장을 부려서 있는 대로 짜증을 냈던 날이었다.


한참 책에 눈을 박아두고 있는데 공중에서 뭐가 뚝 떨어졌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섬찟한 마음에 뭔가 슬로 모션으로 고개를 들었다. 딸의 연보라색 슬링백 위에 늙은 사마귀 한 마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헉!


사진 출처 픽사베이

나와의 거리 고작 1.5미터!!


나는 마흔이 다 되어 가지만 모든 곤충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특히 머리, 가슴, 배가 확실한 녀석들일수록 더 무섭다. 만지기는커녕 죽이는 것조차 못한다. 심지어 남이 죽이는 것도 싫다. 그런 행동이 가능한 경우는 아주 작은 초파리나 하루살이 내지는 도구를 이용해 잡을 수 있는 모기 정도이다. 파리도 죽일 수가 없다. 행여 고맙게도 작은 파리가 살충제나 파리채로 죽어준다고 하더라도 사체를 싸서 휴지통에 넣지도 못하는 심약한 청장년 여성이다. (중년이라기에는 아직 인정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어서 청장년으로 칭한다)


그리하여 그날 밤, 나의 달콤한 독서타임은 끝이 났다. 나에겐 순식간에 몇 개의 문제가 주어졌다.

첫째, 남편이 없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시골에서 자라나 자칭 곤충박사를 역임하고 있는 남편이 있다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사마귀를 곱게 잡아 창밖으로 날려줄 수 있을 텐데. 그가 이토록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둘째, 사마귀가 제법 컸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갈색의 사마귀가 적당히 닳아 두어 번 깎아낸 연필만 하다는 것을 난생처음 알았고, 날개를 쫙 펼치면 흡사 벌새만 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는 내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여 보란 듯이 날개를 폈다가 닫았다. (다소 과장이 첨가됐으나 당시 감정적으로는 진실임을 밝힌다. 인간의 공포는 대부분 착각을 동반한다.) 그것은 사마귀 씨가 날 수 있는 존재이며 지금은 나를 등지고 있지만 언제든지 360도 돌릴 수 있는 그의 눈알처럼 자세를 바꿔서 내게 돌진할 수도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었다. 면밀히 관찰한 결과 그런 참사가 일어날 확률은 80퍼센트 이상이었다. 나는 점점 얼어붙었다.

 

다행히 사마귀는 나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시력을 내 알 길은 없으나 착지 이후의 상황과 환경에 아직 적응 전인 듯했다. 하지만 밤새 대치할 수는 없었다. 허벅지 근육을 십분 활용, 다시 주저앉지 않길 바라며 조심히 일어섰다. 게걸음으로 거실을 벗어나 아들 방으로 꺾어 들어갔다. 미우니 고우니해도 지금 믿을 것은 아들뿐이었다.  


아들은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잘 자고 있었다. 자기 전엔 하도 시간을 끌어서 엄마 성질 경보 유발자였지만 자는 모습은 여전히 귀염둥이였다. 밤 10시쯤에는 무조건 재우려고 하는 나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10시 반부터 말을 건다. 그날도 아마 짜증 내면서 자러 가라고 했을 것이다. 네가 자야 나도 뭔가를 한단다, 아들아. 그리고 네가 안 자니 동생도 안 자잖니? 그런데도 결국 11시를 채우고 간신히 자러 갔었다.  


"하미야, 밖에 사마귀 있어. 사마귀."

"응? 뭐가 있다고?"


내일 아침 8시면 집에서 나가야 하는 중1 아들을 새벽에 깨워 사마귀를 잡아달라는 엄마라니. 한심스러웠지만 별 수 없었다. 결국 아들이 거실로 나왔다.


난데없는 고백이긴 한데 아들은 진짜 나랑 많이 닮았다. 다혈질에, 눈물 많은 것에, 얼굴에, 심지어 겁 많은 것까지. 그랬다. 우리 집에 겁쟁이 원 투가 있다면 내가 원, 아들이 투였다. 반대일지도 모르고.


"엄마, 나 못 죽여. 알잖아. 아빠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어떻게 죽이냐고."

"물어봐서 알려주면 죽일 수 있고?"

"아니."

"거봐. 이제 우리 잠은 다 잤어. 그리고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

"엄마, 우리라니. 나는 낼 학교 가야 하는 거 몰라? 엄마가 알아서 해. 잘게."

 "야, 야. 무슨 소리야. 네가 우리 집 대표지. 아빠가 없을 땐 아들이 가장인 거 몰라?"


아들은 그게 무슨 호랑말코 같은 이야기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도 그렇게 말해준 적도, 그런 대접을 해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들을 믿음직스러운 존재로 인정했던가? (아뇨) 남의 속 꿰뚫어 보는 것도 나를 닮았군.


아무튼 새벽 1시에 긴급회의가 시작되었다. 사마귀는 본인의 진영에서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겨있고, 우리는 낮은 소리로 '네가 가까이 가서 책자를 던져라' , '그러다가 점프하면 어떡하냐', '그럼 약을 치자' , '안 죽으면 어떡하냐, 잔인하다' 설왕설래를 반복했다. 말만 늘어놓지 누구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시간만 흘렀다. 얘 내일 학교 가야 되는데!!


장장 한 시간 동안 식은땀을 흘리던 우리가 결국 사용한 건 소량을 뛰어넘는 살충제와 가로길이가 약 70cm 정도 되는-부직포를 붙여서 쓰는 류의 실내용-기다란 플라스틱 T자 걸레 봉이었다. 살충제를 뿌리자고 한 건 하미였고 본인이 뿌리겠다고 했지만 이것이 잔인한 일이라면 차라리 내가 하자 싶었다. 이건 또 무슨 용기지?


아무튼 그것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사마귀 씨와 작별을 고했다. 사마귀는 결국 창까지 걸어가지 못하고 쓰러졌고 약에서 깨어난 사마귀가 거실을 활보하지 못하게 플라스틱 걸레 받침을 죽은 곤충 위에 올려두었다. 미안해, 정말!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 내 걸레 막대와 비슷하게 생겼다


역시 사체 처리는 다음날 아빠에게 맡겨졌다. 당직 후 퀭한 눈으로 사마귀의 그것을 치우며 혀를 끌끌 찰 때도 우리 원투는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늙은 사마귀와의 만남은, 어른인 체하지만 유리 멘털인 나의 한계와 결국 아들과 내가  똑 닮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사건이었다. 남자 애가 그것도 못 잡냐고 비난할 것 없다. 자러 가라고 짜증 낼 땐 언제고 사마귀가 무서워서 기껏 잠든 아들 깨우기나 하는 엄마, 자기도 무섭지만 딴에는 해보겠다고 여러 번 시도도 해보고 결국 직접적 도움보단 의지가 많이 됐던 하미. 둘 다 어쩜 이리 겁도 많은지! 좌충우돌이지만 거울처럼 선명하다. 나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아들이 존재하던가.


남편은 '당신과 쟤는 정말 못 말린다'며 우리를 세트로 묶었다. 그러더니 싸우지 말고 좀 지내란다. 누가 그러던데! 아이에게 짜증 내는 이유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과 아이가 꼭 닮아서라고. 아이와 감정싸움으로 힘든 날엔 죽어가던 사마귀를 생각한다. 원하는 게 서로 달라서 날을 세우지만 엄마가 두려워서 떠는 날엔 끝내 일어나 주던 착한 하미를 생각한다. 둘 다 겁보라서 산뜻하게 해치우진 못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괜찮은 추억으로 남았다.


물론 요즘도 싸우다가 또 웃고, 화내다가 감동하고. 시시각각 달라진다. 벌레는 아직도 무섭고 사마귀는 올 가을에도 만났다. 하미와 나는 가끔 심술을 부린다. 정말이지 여전히 못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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