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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May 12. 2022

엄마도 본전 생각 날 수 있잖아요

본전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아무리  자식이어도 돈이 아까운 . 부모라고 자식에게  없이 퍼주기만 해야 하나? 나는 최선을 다해 일한다. 시간과 노동력을 쏟아 소득을 얻어  대부분을 자식을 위해서 쓰는 부모의 삶을 17년동안 해내고 있다. 그런 삶을 당연하다고 믿고 살고는 있지만 내내 행복하다면 거짓말이다. 아까울 때도 있고 본전 생각날 때도 있다. 내가 이상한 걸까? 여러분은  그래요?




저녁에 독서모임이 있어서 나가려고 하는데 엄마의 출입에 늘 심드렁하던 아들 녀석이 왠지 꼬치꼬치 묻는다. 언제 오냐, 어디 방면으로 가냐 등등. 묻는 대로 이야기해주고 나서 너는 체육관 언제 갈 거냐고 물었다. 아들은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나 역시 평소대로라면 그저 가겠거니 했겠지만 그날은 한번 더 주지시켰다.


"가기 싫어도 꼭 가. 늦지 말고 가. 이왕 갔으니까 대충 하지 말고 제대로 하고 와, 알았지?"


애들 아빠가 퇴근길에 치킨을 사 온다고 했었다. 애들 학원 끝나면 같이 먹겠다고 했기에 독서모임이 끝나고 걸어오면서 치킨 잘 먹었는지 궁금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빤 운동 나갔고, 자긴 숙제 중이라고 했다.


"오빠는? 오빠는 언제 왔어?"

"오빠는 나 오고 십 분쯤 있다가 왔어."

"넌 언제 왔는데?"

"난 8시 15분쯤."


아들은 복싱 체육관에 다니는데 저녁 7시 10분쯤에 집을 나서고 마치고 오면 밤 9시가 좀 안됐다. 계산대로라면 아들은 아직 치킨을 먹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딸에게 물어보니 오빠는 벌써 치킨을 다 먹고 방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돌아오자마자 샤워까지 했단다. 이상했다. 아, 체육관을 안 갔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도 운동을 꾸준히 했으면 하고 바랐지만 중3 가을이 되자 체육관을 관뒀다. 몇 번 권유는 했지만 어차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고교 입학 후에 다시 체육관에 나가겠노라 선언했다.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랑 같이 다니기 위해서.

곧바로 보내주지는 못했다. 그즈음 다쳤던 손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도 했고, 아이들의 교육비가 거의 월초에 일괄 정산되기 때문에 체육관도 그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카드값 부담도 있었다. 바로 보내주지 않자 아들은 며칠간 입이 닷발 나와 있었다. 드디어 5월이 됐고, 되자마자 약속대로 체육관에 보내줬다. 매일 하기로 약속을 하고서였다.


새로 등록한 첫날 다녀오더니 재미가 없다는 둥, 귀찮다는 둥의 말을 하기에 살짝 엄포를 놓았다. 혹시 하기 싫더라도 이미 결제했으니 한 달은 열심히 하라고 했다. 18만 원이라는 돈은 열심히 하는 아들에게는 아깝지 않지만, 등록만 하고 귀찮아서 안 가는 아들에게는 너무나 아까운 돈이다. 언제나처럼 대답은 선선했다. 한 달 동안 잘 다니마 약속했다. 그러나 5월 2일에 등록했는데 3일은 친구가 못 가서 안 갔고 4일은 공휴일이었으며, 5일은 제대로 갔지만 그다음 주엔 월요일은 가더니 화요일은 안 간단다. 왜 안 가냐니까 자기도 쉬는 날이 있어야 한단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자기는 월, 수, 금만 가겠단다. 나는 눈이 한 일자(ㅡㅡ)로 쫙 찢어졌다. 그럼 애초부터 3일만 간다고 하지, 왜 돈을 다 낸거야, 왜!


3일이라도 열심히 하고 온다면 그걸로 됐다 하려 했지만 꼭 가겠다던 수요일에도 수상한 소리만 늘어놓고 결국은 안 간 것이다. 너무도 당당하게 거짓말을 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는 말에 일찍 나가서 그렇다며 얼버무리더니 갑자기 왜 의심하냐고 따져 물었다. 아들은 몰랐다. 거짓을 말하는 눈동자는 좌우로 많이 흔들린다는 것을. 상대의 질문에 '왜?'라고 되묻는 게 더 수상하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는 더 예리하게 그것을 눈치채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꼭 8년 전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은 그날 피아노 학원을 안 갔다. 아이들이 저학년 때 학원을 빠지면 학원에서는 부모에게 곧장 연락을 취한다. 그 사실을 몰랐던 아들은 밖에서 놀다가 학원이 끝날 때쯤 집에 왔고 일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막 들어온 것처럼 굴며 간식을 찾았다. 그날 아들은 손바닥 다섯 대를 맞았다. 얼얼한 손바닥을 문지르며 다시는 거짓말을 안 하겠노라 했다. 안아주면서 이제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절대'라는 약속은 얼마나 힘이 없는지 새삼 느끼고 나니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무시한 채 어린이의 손바닥을 붉고 섭섭하게 만든 시절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어차피 깨질 약속인데 애는 뭐하러 때려.


그때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기라도 했지. 기어이 거짓말임이 밝혀지고 나자 나는 배신감에 입이 딱 벌어지는데 자기는 천하태평으로 겨우 한 번 빠진 걸 가지고 왜 그러냐고 대꾸했다. 무성의한 아들을 보며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친구 때문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들을 째려보고 있자니 눈물이 벌컥 났다. 억울함이 확 밀려들어 왔다. 하고 싶다고 하는 건 어지간하면 하게 해 주었다. 갑자기 크고 정기적인 지출이 생겨버리면 다른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운동하고 싶어서 해달라는 건데 우리가 덜 쓰더라도 해주자 싶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성실하게 임할 때 존재하는 감정이다. 그게 돈에 상응하는 값어치였다. 저렇게 부모를 기망하며 고마운 줄도 아까워할 줄도 모르다니. 그 무례에 억울함이 치솟았다. 내가 하찮아진 기분이었다.  


노기가 서려 파르르 한 입술과 붉게 젖은 내 눈을 흘깃 보더니 아들은 왜 또 그러느냐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변명도, 앞으로 절대 안 그러겠다는 다짐도 않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듯이 쳐다보는 아들에게 진짜로 실망했다. 아까웠다. 지독하게 아까웠다. 우리의 시간, 그 돈, 아들을 향했던 나의 믿음, 전 날까지 행복했던 그 감정까지도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왜 우리를 무시하느냐, 한번 빠졌다고 말하지만 결국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네가 체육관에 나간 날은 고작 사나흘이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서 버릇이 없는 거냐, 왜 아까운 걸 모르느냐, 거짓말은 왜 하느냐, 내가 우습냐.


감정이 점점 치닫고 있었다. 이쯤에서 네가 '엄마,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해주면 끝내고 싶단 생각이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따름인 아들을 보고 있자니 분노가 널을 뛰었다. 내 입술은 멈출줄도 모르고 안 해도 되는 말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네가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고 학원에 안 간 순간 우리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다'라고까지 했다. 푹 숙이고 듣던 아들은 고개를 들더니 나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울었다. 눈물을 보고서야 나는 말을 멈췄다. 가슴이 아프거나 미안해서가 아니었다. 끝내 열리지 않을 사과의 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을 멈추자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어이 서로를 할퀴고 말았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 엉엉 울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빴던가. 돈 때문인가 거짓말 때문인가.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아까운 마음이 컸다. 이제 와서 본전 생각을 하다니 엄마도 아닌 걸까. 학원쯤은 하루 빠져도 그럴 수도 있지 해줬어야 했는가? 왜? 나는 죽어라 일해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아이들의 꿈과 건강을 산다. 애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열심히 사는 만큼 아이들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그게 잘못인가? 나는 부모의 돈을 우습게 알며 자라지 않았다. 나 역시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베풀 줄 모르고 넉넉하게 쓰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무엇부터 잘못된 걸까.


이불에 얼굴을 묻고 한참 엉엉 울고 나니 기분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요 며칠 내내 울고 싶었다. 오늘 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게 들통나서 내가 소리를 좀 질렀지만 평소에는 소리는커녕 몇 마디 말도 잘 붙이지 못하고 섭섭한 적이 많았다.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할 때까지 말을 한마디도 않는다. 아침 식사를 할 때 몇 개의 질문을 던져도 어깨를 한번 으쓱하는 걸로 모든 대화를 끝냈다. 왜 대답을 않냐고 말하면 세상이 금방 꺼질 것처럼 한숨을 내쉬곤 숟가락을 탁 놓았다. 저녁에는 기분이 좋아지기에 아침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아침엔 기분이 안 좋으니 질문을 삼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대체 누가 어른인지 알 수 없었다. 화가 났지만 그래도 참았다. 아이들을 잘 키워낸 언니들이 늘 말했다.


 '사춘기 때는 엄마가 참아줘야 해. 두 번 참을 걸 열 번 참아. 그 시기 잘 지내고 나면 아이들도 엄마 고마운 거 다 알아. 그때 잘해줘야 평생 가.'


 그래서 참았다. 아침엔 더 많이 참았다. 아이의 하루가 망쳐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오래 전에 본 어느 드라마에서 인어가 울면 진주가 되고 갖다 팔면 돈이 된다는데 내가 인어라면 그 눈물의 환전은 얼마인가. 엄마가 너무 돈, 돈 거린다고? 뭐, 엄마는 본전 생각하면 안 되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들에게 사과는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나도 져줄 생각이 없고, 참을 생각도 없다. 언니들은 틀렸다. 참기만 한다고 수는 아니다. 지나고 나서 고마운 줄 알면 뭘 하는가. 엄마도 상처받고 엄마도 억울하다. 며칠이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대치할 예정이다. 부모의 주머니는 한없이 자비로운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원하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으면 변심보다는 성실이 바른 태도임을 알게 할 것이다. 이미 손해는 보았지만 그렇다고 다 털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지갑은 마음과 함께 열린다. 나의 신뢰와 애정을 함부로 대한 것에 아들이 미안해 할 때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김치볶음밥 먹고 싶으면 얼른 사과해, 너.

(아들은 엄마표 김치볶음밥을 엄청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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