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졸업사진

by 리다리

출근길이었다. 오후 1시 출근인 데다가 집에서 자가용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터라 느긋하게 출발했다.

오늘따라 신호가 많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 내에 가리라 예상했었는데 사무실에 거의 다 와갈 때쯤 늘 이용하는 샛길에서 비상등을 켜서 정차한 차를 보았다. 원래 스쿨존이었기 때문에 적은 속도로 지나가는 구간이지만 정차된 차는 예상 밖이라 완전히 속도를 낮췄다. 그리고 차주로 예상되는 한 여성이 초등학교 정문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뭐 하는 거야? 차를 저렇게 세우고 사진 찍는 거야 지금?"


사진출처 픽사베이


편도 1차선이라 추월이 불가능하고, 중간에 주황 봉이 박혀있어서 -그러면 안되지만- 중앙선을 침범해 지날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앞 차가 움직여야만 했다. 클랙슨을 울릴까 하는 찰나에 피사체로 예상되는 아이가 툭 튀어나왔는데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아, 졸업?'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내 차를 향해 꾸벅 인사하는 아이와 손에 든 것들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솟았다. 오른쪽 학교 정문에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코로나가 빼앗아 간 것은 엄청나게 많고 졸업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넓은 운동장에서 울려 퍼지는 헌사와 졸업식 노래들은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성장(盛裝)한 부모님 앞에서 학사모와 가운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는 어린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졸업식도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자기네들끼리 했고, 부모님은 갈 수 없더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봤었는데. 그랬구나. 졸업식을 엄마가 보지 못했구나.


나 때는 부모님이 꽃다발을 사 왔고, 할머니까지 대동하고 와서는 용돈도 주고 자장면도 사주고 그랬다. 초등학교 때는 자장면이고 중학교 때는 돈가스였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놀기 바빴지만.

다른 학교들보다 훨씬 길게 다녀서인지, 처음이라 더 진한 감동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초등학교 졸업식이야말로 지워지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정든 교정을 떠난다는 것, 이제는 학교에서 입으라고 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막연한 기대 속에서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간지러운 기분에 들뜨던 그때.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고 그 부모에 동생까지 사진을 찍고, 담임선생님과 사진을 찍으려고 줄 서서 기다리던 그 교정이 못내 그립다.


이태 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 녀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다 모시고 가서 가족사진도 찍고 그랬었다. 작은 아이도 데리고 서서 푸른 교정에서 꽃다발을 턱밑에 대고 사진을 찍던 때가 손에 잡힐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기억을 지우는 신을 감각적으로 찍듯이 스르륵 그 사진이 사라진 느낌이다.


일터에서 일하는 엄마는 아들 졸업식이라 월차를 내야 하나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면서 졸업생들만 졸업식을 한다는 공문을 받았을 테다. 엄마는 다른 날처럼 출근을 했고, 아이는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여느 날처럼 그냥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졸업이니까. 첫아이든 둘째 아이든 졸업은 딱 한 번 있는 날이니까. 반차를 냈는지 점심시간을 이용해 외출을 했는지 몰라도 주문해 둔 꽃을 찾아서 아이를 태우러 왔고, 그래도 너무 아쉬워 마지막으로 교정 앞에서 사진 한 장 박고 싶었나 보다. 차를 세울 때가 마땅치 않고, 시간도 없어서 워낙 차들이 잘 안 다니는 곳이니 살짝 찍고 올라탈 예정이었겠지.

클랙슨을 안 누르는 내게 고마워했는지는 알 길 없지만 엄마 차에 오르기 전에 나를 보고 살짝 목례하는 아이를 보면서 왈칵했던 것은 하필이면 이럴 때 졸업을 하게 돼서 제대로 졸업식을 기념하지 못하는 그 이름 모를 아이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졸업생들이 안쓰러워서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어른들이 약속을 잘 안 지켜서, 모이지 말라는데 모여서, 만나지 말라는데 만나서, 가지 말라는데 가고, 먹지 말라는데 먹어서 미안한 눈물이 났다.

눈물을 쏟지 않으려고 끔뻑끔뻑 하는 사이 앞 차는 멀어졌다. 텅 빈 운동장 전면에 나부끼는 졸업 축하 현수막은 영상의 날씨에도 뻣뻣하게 언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졸업생들에게 졸업 축하한다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도 여전히 고생할 일이 있겠지만 그래도 힘차게 출발하자고 말해주고 싶다. 3년이 또 지나서, 아니면 몇 해가 또 지나서 한 번 더 졸업하게 되는 날 그때는 너희도 둥그렇게 서서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전염병도 , 미세먼지도, 전염병도 사그러지고 만 세상에서 꽃다발 같은 환한 미소로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년 졸업생들에겐 이런 인사를 건네지 않아도 되길. 졸업이 종업식처럼 그냥 지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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