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의 이유

by 리다리

친구가 갯벌에서 잡았다면서 동죽을 한 소쿠리 쏟아부어주고 갔다. 내게 조개를 비롯한 해산물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다. 즐기지 않는 데다가 심지어 생물을 만지지도 못해 누가 주고 가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세숫대야에 소금 한 바가지 퍼 넣고 조개를 넣어두면 조개가 입 속에 넣어둔 모래를 뱉는다. 시간이 지나서 조개를 건져다가 바락바락 씻어가지고 탕이든 찜이든 해 먹으면 한 끼 반찬으론 으뜸이다. 알지, 내가 모르겠어?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 난 못 만지겠는걸.


친구는 표표히 떠나고, 나와 동죽들만이 남은 주방에선 느닷없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저 조개들이 걸어서 세숫대야를 탈출하는 순간 기절초풍일 나로서는 그들 중 누군가 나오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장갑을 낀 손으로 날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대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오기만 해 봐! (친구 말로는 다슬기처럼 기어 나오는 동죽조개는 세상에 없다고!!) 그런데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불현듯 하얀 동죽에 죽죽 그어진 저 선이 나이테라고 했던 김훈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동죽조개는 껍데기에 나이테를 갖는다.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성긴 테는 조개의 여름이고 촘촘한 테는 조개의 겨울이다. 모든 조개들이 그 껍데기에 삶의 고달픔과 기쁨들을 기록한다. 해양생물학자들은 조개껍데기들을 들여다보고 조개의 연륜뿐 아니라 조개의 일륜까지도 읽어낸다. 조개의 하루가 그 껍데기 위에 기록되고,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나갈 때 조개의 생명의 안쪽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의 흔들림이 조개껍데기 위에 미세한 음파처럼 퍼져나간다." <자전거 여행> 중에서


출처 pixabay


인간의 나이테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얼굴로 나이를 가늠하니까 점점 많아지는 눈가의 주름이 나이를 감별할까. 작은 조개는 연륜은 물론 일륜까지 알 수 있을 만큼 투명한데 인간은 옷으로, 화장으로, 주사로 나이를 감출 수 있다니 어딘지 음흉하다.


사람이 마흔이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던데 나는 무엇으로 내 나이를 증명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서서히 짙어지는 피부색과 주변을 감싸는 주름들. 늙지 말라 용을 써보지만 결국 주름 잡힐 피부를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주름을 인정하는 것이 성장의 흔들림이다. 주름이 인간의 나이테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자국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문득 손등을 바라보니 나도 많이 늙었다. 예전에는 손등이 더 매끄러운 것 같았는데 이제는 미세한 주름이 아주 엉성하지만 분명한 그물처럼 생겨나고 있다.

사십 년 전에 생겨나 날이 차서 울었고, 때가 돼서 자랐고, 점점 피어나 아이를 낳고, 단 한 번도 끓여보지 않은 미음으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요리 레벨을 쌓아가고. 15년 동안 매일 아이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했다. 원복을 준비하고, 체육복을 빨아 널고, 교복을 다려 입히는 동안 내 손등에도 연륜이 지나갔다. 정직하게, 자연스럽게.


눈가도 마찬가지. 어떤 연예인은 중학교 때부터 아이크림을 바르고 다녔다는데 나는 마흔이 돼서도 별 관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부쩍 눈가엔 아무렇게나 부려놓은 빨랫줄처럼 주름이 생겼다. 그 역시 내겐 정직한 행보일 뿐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울고 웃는 동안, 그 아이를 빤히 보는 동안, 아픈 아이를 붙잡고 기도하는 동안 내 눈가엔 촘촘한 주름이 쌓였다. 내 엄마의 눈가에도, 내 할머니의 눈가에도 차례로 쌓아 올린 주름들. 우리가 엄마로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


조개를 보며 참 별 생각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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