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스우파! 크으- 정식 명칭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고 댄서들이 경연하는 모습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가수가 아니라 가수를 빛내주던 댄싱 크루들이 협력하고 충돌하면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나가는데, 보고 있으면 멋지기도 하고 옛날 생각이 난다. 그 당당함에 대한 당당함. 그 열정! 완전 푹 빠졌다.
내게 90년대는 거의 모든 학창 시절이다. 신나는 기분으로 밀레니엄을 맞이했지만 앞자리가 19인 것이 이런 그리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음악을 사랑하고 춤을 사랑하던 그때, 내가 얼마나 빛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뜻 모를 박탈감에 방황하던 그 시절이 못내 그립다. 콘서트는커녕 팬클럽 한 번 가입해 본 적 없지만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사서 모으고, 라디오에 좋은 노래가 나오면 엄마 몰래 영어테이프에다 녹음을 했다. 마이마이에 테이프를 넣고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밤을 보냈는지. 그 무거운 소형 카세트를 교복 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고 학교에 가는 버스에 오르기도 했다.
중3 때부터 고2 때까지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시골이라고 해도 도시 근교여서 차로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시에서 살다보니 갑자기 전원주택을 지어서 이사 간다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3 때는 전학을 하지 않고 아빠, 엄마가 출근할 때 같이 학교에 갔지만 고1부터는 45분 동안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버스정류장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등교만 한 시간!! 내가 원하던 학교도 아닌데 집에서도 멀었고, 사춘기라 그런지 부모님도 동생도 모두 싫고 질풍노도인지 뭔지도 모른 채 자꾸 침잠하는 중이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친구 소영이가, 시내 어디에 가면 춤추는 오빠들이 있는데 엄청 멋있다면서 보러 가자고 했다. 어떤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시내에 갔다. 시내라고 했지만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시립 체육관 주차장 쪽이었다. 다른 데는 양달이었지만 그곳은 건물 뒤편의 응달이었다. 오후면 그쪽으로 그늘이 지는 모양이었다. 계단 아래쪽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가방들, 후드 점퍼나 교복 마이들이 있었다. 음악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왔고, 음악을 끄거나 켤 때 눌러주는 누군가가 따로 있었다. 춤추는 오빠들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모두 사복이었다. 바지는 늘 통이 컸고 주로 청바지나 면바지. 상의는 계절에 따라 후드티나 흰색 반팔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비보잉 같은 건데 그때는 정확한 명칭 같은 건 몰랐다. 그냥 길거리 댄스였다. 그것도 배틀. 한두 명씩 나와서 본인이 출 수 있는 춤을 추었다. 윈드밀, 나이키, 헤드스핀 같이 내가 아는 춤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동작도 많았다. 춤추는 오빠들은 꽤 멋있었다. 자유롭게 다리를 휘젓다가 어느 순간 결심한 듯 바닥을 짚고 두 다리를 옆으로 차 올리면 유승준이 텔레비전에서 추던 가위춤이 완성됐다. 어떤 오빠는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다리와 팔을 엑스자로 흔들다가 역시 결심한 듯이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두 다리를 브이자로 들어 올리며 두 손바닥을 교차로 바꾸었다. 이 동네에서 토마스를 가장 잘하는 오빠라나 뭐라나. 소영이는 연신 나에게 귓속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언니들도 가끔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 역시 오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우리 말고도 많았다. 춤추는 오빠들하고 똑같이 커다란 바지에 남방을 입고 가방을 크로스로 길게 맨 언니들도 있었고,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때마침 유행하는 아이돌의 옷을 따라 입은 아이들도 보였다. HOT의 캔디 옷이나 S.E.S의 바지 정장, 영턱스클럽 멤버들처럼 옷 입은 애들도 있었다. 교복을 입은 우리는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지만 교복을 입은 애들이 우리뿐인 건 아니었다. 다만 고등학생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교복 때문에 들킨 것 같아 다음에는 꼭 나도 사복을 싸오리라 마음먹었다.
그 후에도 시간만 나면 뻔질나게 체육관을 찾았다. 소영이가 못 가는 날은 다른 친구들을 데려가기도 했다. 때로는 롤러장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소문이 전해졌다. 이번 주는 체육관이 아니라 롤러장에서 한다고 미리 듣고 간 건지, 모르고 체육관에 갔는데 사람들이 없어서 롤러장으로 몰려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자리를 옮겨 다니는 오빠들을 따라다녔다. 평일에도 가고 싶었는데 엄마의 서슬이 무서워 차마 가진 못했다.
그러다가 중3 늦가을 이사가 결정됐다. 주말마다 시내 나가는 것도 어려워졌다. 학교 끝나면 바로 엄마 가게로 가서 있다가 집으로 함께 돌아와야 했다. 버스 타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하자 너무 어려서 안된다고 했다. 사실 길도 잘 몰랐다. 3월엔 입학을 했고, 드디어 버스를 타게 됐다. 버스표를 잘라서 지갑에 곱게 넣고도 몇 번을 확인했다. 버스정류장에는 나처럼 도시 쪽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시간차를 두고 몰려들었다. 교복은 몇 명을 제외하곤 거의 달랐다. 버스가 오기 직전에 어디서 많이 본 바이브의 남학생과 서너 명의 여학생이 같이 도착했다. 자세히 보니 체육관에서 춤추던 오빠 중에 한 명이었다. 이름은 홍진. 도시에서 춤추는 오빠를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다니. 그 동네로 이사 갈 줄도 몰랐지만 그 오빠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니! 심지어 나랑 매일 버스를 같이 타고 등교를? 나는 너무 떨려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오빠가 나타나지 않는 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얘, 왜 요즘은 체육관 안 오니?"
한 두 달이나 지났을까? 제법 낮으로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기도 했던 걸 보니 5월쯤 된 모양이다. 어느 날 아침, 홍진 오빠가 버스정류장에서 느닷없이 말을 걸었다.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때 머리에 실핀 많이 꽂은 언니들의 눈초리와 뒤에 서 있던 한 열댓 명 남짓한 각양의 눈빛이 내게로 한 번에 쏠렸다. '예?'라고 말할 때의 내 얼굴은 빨갛다 못해 거의 보라색이 돼 있었다. 심장이 곧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개신 여고 교복 맞지? 1학년에 김지연이라고 알아? 내 사촌인데."
"네? 김지연요? 저희 반 김지연?"
세상에. 지연이가 홍진 오빠랑 사촌이라니. 놀란 마음을 다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등굣길은 고역이었다. 오빠는 15분 정도 있다가 바로 내렸고, 난 30분을 더 가야 했다. 언니들이 오빠랑 같이 내리지 않았다면 몇 대 맞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리면서도 사람을 어찌나 흘겨보던지. 내가 왜 여기 탔을까. 언니들이 다 내리고 나서도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학교 도착하는 길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오빠가 말을 걸고 나서 보름 이상 아빠한테 데려다 달라고 했다. 지각한 적도 있었지만 언니들이 무서워서 차마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오빠랑 사귀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실제 나이 열여섯. 연애가 시작됐다. 엄청 큰 눈으로 춤에 몰입해서 몇 시간씩 서서 보는 모습이 귀여웠다나 뭐라나. 자기가 오는 줄 알면서도 안 본 척 흘끔거리는 것도 알고 있었다나? 하지만 그 후로 몇 번 똑같이 체육관 뒤에 놀러 갔을 때 이전만큼 신나질 않았다. 자꾸만 사람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게 싫었다. 데이트랄 것도 없지만 토요일이면 학교 끝나고 만나서 시내를 내내 걸어 다녔는데 너무 자주 오빠의 지인들을 만났다. 왜 춤추러 요즘 안 오냐, 얘는 누구냐. 중학생이랑 사귀냐. 등등. 기분 나쁜 말도 있었고, 기분 좋은 말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는 주눅이 들었다. 서울만 안 갔지, 연예인 뺨치는 오빠랑 키도 작고 못생긴 나랑은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가 않았다. 오빠가 싫었던 건 아니지만 너무 부담스러웠다. 동네에서 만나자니 보는 눈이 너무 많았고, 시내에서 만나자니 아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마주쳤다. 둘 다 연고가 없는 동네를 쏘다니기도 했지만 곧 재미가 없어졌다. 가끔 대학교 근처를 배회하고 다니기도 했다.
"너는 이제 공부해야겠네. 대학도 가야 하고."
"응. 그래야지."
고2가 돼서 우리는 집을 팔고 다시 도시로 이사를 왔고, 더 이상 야간 자율학습을 뺄 수가 없었다. 그때쯤 아빠는 내게 CD플레이어를 사주었고 나는 바닥을 쓸고 다니는 스트리트 댄스보다 R&B 발라드에 빠졌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해내야 했고, 공부도 해야 했다. 오빠도 취업을 준비해야 했고,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더라. 점점 연락이 뜸해지면서 조금씩 소원해졌다. 나는 삐삐를 없애고 휴대폰을 샀는데 오빠에게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지연이도 소영이도 지금은 연락이 닿질 않는다. 20년이 넘는 동안 나의 나인티 나인은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엄청나게 큰 링 귀걸이, 색깔이 들어가 있는 서클렌즈. 죽일 듯이 상대를 노려보는 눈빛, 그야말로 포스. '스우파'를 보다 보면 99년도 초여름이 생각난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바닥을 짚어가며 다리를 차 올려 뱅글뱅글 돌리던 오빠들, 그 앞에 서 있던 센 언니들, 그리고 뒤에 있던 우리들까지. 있던 색깔을 모두 날려 흑백처리 한 사진처럼 선명하면서도 흐릿하게 기억하는 한 장면이다. 소영이랑 배틀의 소문을 따라 쫓아다니던 중학생 때의 기억이 진짜 맞는 건지 아삼삼 할 때도 있다. 아무튼 그땐 정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스우파'를 볼 때처럼!
지금은 그런 열정도 시간도 없고, 장소도 없지만 가끔 버스킹 하는 댄스팀들을 볼 때 홍진 오빠를 떠올린다. '스우파'를 보면서는 나를 떠올린다. 뭔가에 열정을 쏟던 그때. 간지러운 훈풍이 로맨스 전두엽을 강타했던 그때. 근데 그게 로맨슨지 뭔지 그냥 언니들만 소름 끼치게 무서웠고, 오빠가 나를 여자 친구라고 소개할 때마다 점점 주눅들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전투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누가 봐도 멋진 오빠에게 사정없이 멘털이 흔들렸다. 누군가 나를 함부로 다른 세계로 옮겨다 놓은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배틀을 뜨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동경하는 세계를 부유하는 나와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나. 어떤 것이든 나였다.
솔직히 말하면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99년과는 크게 상관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내가 떠올랐을 뿐이다. 갇힌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자유로울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절대 고독을 음악과 함께 견뎠나 싶기도 하고. 친구에게 부러움이 돼보기도 하고, 동네 언니들의 시샘도 받아보고, 부모님에게 천덕꾸러기도 돼 보고 했던 옛날이 떠오른다. 리듬 속에 몸을 맡기고 가장 멋진 동작을 만들어 내는 댄서를 보면서 내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무얼까. 그저 청춘?
나에게 90년대는 무엇이었을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특권 없는 청춘, 신화 없는 신화. 모르겠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모순의 연대기를 가슴 한 편에 묻고서, 다시 무감한 생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그저 그것뿐이다.
정이현 산문 [작별] 중에서